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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3 20:41 수정 : 2008.10.13 20:41

김기창/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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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과 ‘폭력’은 다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때 우리는 수만명이 운집한 시위를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시위는 결코 ‘폭력적’이지는 않으나 대단한 ‘위력’을 수반한 행위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집회도 ‘폭력적’이지는 않으나,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경찰 당국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이 시위가 나중에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므로, 초기의 시위는 ‘위력적’이긴 하나,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위’(示威)라는 개념 자체가 여러 사람이 모여 ‘위력’을 ‘과시’한다는 뜻이다. ‘평화적 시위’와 ‘폭력적 시위’는 구분된다는 점을 보더라도, 위력과 폭력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무리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 한들, ‘폭력적’ 의사 표현이 보호될 수는 없다. 이 점은 문명국 법에 공통되는 점이다. 그러나, ‘폭력’이 보호되지 않는다고 해서 ‘위력’의 행사마저 처벌돼야 한다면, 시위나 정치적 불매운동은 ‘위력적’이지 않은 경우(아무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만 보호된다는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만다.

이미 한 달 넘게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조·중·동 불매운동 주동자들이 했다는 행위는, ‘불매운동 행위’를 인터넷상에서 권유하고, 방법을 제안하고, 광고주의 연락처를 게시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불매운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컴퓨터 자판을 사용하여 입력하는 행위가 ‘폭력적’일 수는 없다. 입력을 완료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폭력적일 수도 없다. 입력한 내용은 컴퓨터 스크린에 표시된 상태로 있을 뿐이다. 컴퓨터 스크린이 광고주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없을 것이다. 비유적 수사로 흔히 일컫는 ‘언어 폭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비유적 수사’일 뿐이다. 비유적 수사와 문학적 상상력으로 법적 분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권유하는 ‘글을 게시하는 행위’와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은 다르지만, 어느 행위든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에 게시된 글은 독자가 자발적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해야 비로소 열람이 가능하다. 전국의 여러 컴퓨터 이용자의 모니터 스크린에 불매운동을 권유하는 글이 나타나는 상태가 광고주에게 ‘위력’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주 스스로 해당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그런 글을 읽더라도, 그것이 광고주에게 ‘위력’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조·중·동 광고주들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태가 위력을 구성한다 하더라도, 이 상태가 ‘폭력적’이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은 현대 문명국들이 모두 보호하는 ‘비폭력적 불매운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력’이 수반되는 불매운동은 모두 ‘위법’하다고 검찰은 주장하는 것 같다. 요컨대, 아무 ‘위력’도 없는 실패한 불매운동만이 적법하게 허용된다는 한국 검찰의 주장은 새로운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행해지는 현대 사회의 불매운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일부 수구 언론의 내밀하고 사적인 욕구의 표현일 뿐, 정치적 표현과 소통의 자유, 그리고 소비자 기본권이 보장되는 문명 국가의 법원이 채택할 성질의 주장은 아니다. 위력과 폭력을 구분하지 않으면, 모든 시위는 처벌되어야 한다는 경이로운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 검찰과 수구 신문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김기창/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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