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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9 19:31 수정 : 2008.10.29 19:31

김태균 일본 와세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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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고이즈미가 평양을 방문한 이후 일본의 대북외교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답보 상태이다. 6자 회담에서도 일본은 중국과 미국의 그늘에 가려 종적을 감춘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북한 문제가 일본 국내 문제와 맞물리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특히 일본인 납치사건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일본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보수우익세력에 의해 납치문제 해결은 일본 정부의 최대 숙원사업으로 부각되었고, 결국 북-일 관계의 외교협상은 어떤 식으로든 선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빗장에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난 11일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해제했다는 발표는 일본에 청천벽력이었음이 틀림없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면죄부를 준 것은 일본으로 하여금 북-일 협상의 마지막 카드까지 잃게 만든 셈이 되었다. 이는 일본 정치의 보수화가 자초한 결과이다. 대외적으로 21세기에 들어와 일본은 외교의 다각화보다는 미국 일변도의 동맹구조에 안주해 왔으며,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같은 정치권의 보수화가 주변국과의 선린관계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지금까지 밀월관계에 있었던 부시 정부와도 내부 조율에 실패했는데, 11월 미 대선에서 테러국가와도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다는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일본은 미-일 동맹에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해야 될지도 모른다.

국내 정치상황 역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2006년 이래 지금까지 무려 3명의 총리가 갈렸다. 아베의 참담한 실패에 중도 이미지의 새로운 후쿠다 카드가 동원됐지만, 결국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우파 세력인 아소에게 정권을 넘기게 된다. 정치 판세가 불리할 때마다 자민당은 ‘총리 갈아치우기’로 보수정권의 위기를 관리해 왔다. 잦은 총리 교체가 미국이 일방적으로 대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빌미로 작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로 중의원 총선을 앞둔 아소에게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달래야 하는 동시에 이 기회를 정권교체의 호재로 삼고 있는 민주당의 도전에도 유의해야 한다. 미국의 해제 발표가 있자마자 곧바로 아소 정부는 대북제재를 다시 6개월간 연장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납치문제를 미국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보수세력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보수화의 속도는 보수화의 덫에 걸릴수록 더욱 빨라질 확률이 높다. 우선,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자민당의 집권 연장을 위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일본이 지금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따라가고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북한 경제개발 원조에 관한 자금줄을 움켜쥐고 판을 새로 짜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핵불능화 2단계 검증과 맞물려 2·13 합의에 따라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이 북한에 제공되어야 하는데, 상당한 자금이 일본에서 나와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됐는데도 핵불능화에 실패하면 일본도 핵무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를 위시한 전시법에 관련된 헌법 조항 개정을 다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도 군비를 증강하는 안보 딜레마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지금 일본에 가장 시급한 것은 보수화에 제동을 걸 만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소 정권에 이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명약관화하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상당 기간 일본은 보수화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김태균 일본 와세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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