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3 20:54
수정 : 2008.11.0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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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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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지만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게 선거다. 저 멀리 남의 나라 대선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대선 결과가 향후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추동해낸 북-미 관계 급진전이 그해 말 미국 대선 이후 북-미 갈등 재연으로 귀결되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으로 순항하던 북-미 관계가 대북 강경의 부시 대통령 당선으로 하루아침에 역풍을 만났고, 그 후 6년 동안 북한과 미국은 소모적인 대결을 지속해야만 했다. 미국 대선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후퇴하거나 요동친 경험은 그 한 번으로 충분하다.
쓰라린 과거 경험을 생각건대 남북관계의 장기 경색이 구조화되고 있는 지금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는, 그래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데 결코 기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반포용 기조와 맹목적인 대북 길들이기가 당분간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힘든 조건이라면 미국 대선 결과가 북-미 관계 진전의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의 한 축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민주당 후보의 당선 이후 북-미 협상이 진전되고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의 상호 교환으로 핵문제가 나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미국 대선 이후 우리가 기대하는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일 것이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겠다는 오바마 후보인 만큼 그의 당선은 아깝게 좌초된 북-미 정상회담을 어느 때보다 기대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오랜 숙원이었던 북-미 최고 지도자간 신뢰가 형성되는 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남북 관계의 장기 경색을 고려하면 지금 한반도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그나마 가능하고 유일한 추동력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 정부의 적극적 대북협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까지 진전시킴으로써 한-미 동맹 중시의 이명박 정부를 억지로 움직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오바마 후보의 당선과 북-미 관계 진전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수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동맹 중시를 내세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동참하기보다는 의연한 강경 기조를 지속하면서 그동안 외롭게 소외되었던 일본의 보수 정권과 손잡고 반오바마 연합 전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테러지원국 해제를 놓고 격앙된 반미 주장을 쏟아내는 일본 우파 정치인과 한국 보수 논객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금융위기에 부닥친 미국이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결국 한국과 일본에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는 이를 활용해 대미 압박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보수 정권이 미국 정부를 압박하며 반미 전선에 나서는 이례적 모습이 연출되는 셈이다. 이 경우 2009년 한반도는 북-미 관계 진전의 한 축과 이를 만류하는 한-일 연합 전선의 한 축으로 팽팽한 갈등을 보이게 되고 갈 길이 먼 한반도 평화체제는 또 한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시대상황을 역행하는 제2의 김영삼 정부를 볼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최악의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북-미 관계 진전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재로 전환하는 시민적 노력은 포기할 수 없다. 어렵게 도래한 평화롭고 안전한 한반도 정세 변동의 기회를 이명박 정부가 놓친다면 시민의 힘으로라도 그것을 지켜야 할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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