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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4 20:57 수정 : 2008.11.04 20:57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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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와세다대학의 명예교수로서 무력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 군대와 성의 문제, 남성이 쓴 역사서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역사기술에서 기억의 의미와 위치, 식민주의와 젠더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일본인 학생은 물론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에게 강의해 왔다. 가해국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일본군 성노예제를 조사하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함께 참여해 왔다.

그런데 지난 11월3일 광복회를 비롯한 32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허가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곤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36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목숨을 바쳐 싸워 오신 분들, 그토록 훌륭히 독립운동의 위업을 다해 오신 분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서대문독립공원 안 건설은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광복회는 성명문에서 “전쟁과 여성을 위한 인권 박물관” 건설의 “적극 지지”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건설하는 것에는 “결사 저지를 선언”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항일의 산실이며 민족혼의 성지”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우리 민족이 적극적인 항일투쟁보다 일제에 의해 수난만 당한 민족”이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주입시키려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 과감히 싸우고 계신 분들은 누구인가? 일본이 과거 전쟁 범죄에 대해 잘못을 공식 인정하고 사죄함으로써 일본 국가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분들, 그 싸움을 계속하고 계신 분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 여든이 넘으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이다. 그 할머니들을 지원하고 함께 싸워온 것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여성들이며, 그 싸움의 정당성을 함께 공유하고 싸워온 것이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다.

끊임없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여성들의 싸움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전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불처벌의 역사, 그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에 관한 공식 사죄와 국가배상을 촉구하는 권고결의도 낳았다.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 유럽의회, 최근에는 한국 국회에서도 동일한 권고결의가 발표되었다. 10월30일에는 유엔 자유인권규약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대한 심사보고서 및 권고를 발표해 “‘위안부’ 생존자에게 충분한 배상을 하기 위해서 ‘법적·행정적인 신속한 조치’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사죄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목숨을 바쳐 독립을 위해 싸워 오신 분들의 성지에 이러한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은 지금까지 식민지 지배하에서 일제가 자행했던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 인권과 존엄회복을 희구하며 과감히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을 도와왔던 정대협의 여성들, 이 투쟁을 공감하고 지원하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의 투쟁을 역사에 남겨, 미래의 세대들에게 밝은 역사의 한 항목으로서 전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장소가 서대문독립공원이라 믿는다. 세계 각국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인권과 평화에 관한 세계 공통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싸워온 피해여성들을 존경하고 공감할 것이다. 일본군에 의한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나누며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력분쟁에 따르는 성폭행이 그칠 것과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오기를 염원한다.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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