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7 19:26
수정 : 2009.01.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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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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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극의 빙하가 지구 온난화에 녹아내리듯 고교 평준화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올 봄 중3에 올라가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교 진학 때 특목고, 과학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사립고, 공립형 기숙고, 마이스터교, 사립고 리그, 공립고 리그 등 다양한 학교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짐작건대 학부모들이 학교 유형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가 고등학교를 경쟁을 통해 다양하게 만든다고 공언한 결과다. 학교의 다양성은 교육과정의 다양성으로 판가름 난다. 하지만 모든 고교들이 획일적으로 대학 입시에 목을 걸고 오로지 학교 유형의 다양성만으로 차이가 드러날 경우 학교 서열화, 고교입시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써 1973년부터 35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던 고교 평준화가 2010년을 계기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고교 다양화 300 플랜’ 중 자율형 사립고 100곳 설립계획은 그나마 표면적으로 유지되던 고교 평준화를 본격적으로 해체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서울시내 일반계 사립고 140곳 중 2010년까지 지자체마다 한 곳씩 25곳을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율형 사립고는 현재 전국 6곳에서 운영되는 자립형 사립고와 비슷한 유형으로,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수업료를 일반계 고교의 세 배 이상 받을 수 있다. 지역과 학생의 특성을 고려해서 교과목 종류, 과목별 수업시수 등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 신입생 선발이 자유롭다. 대략 서울시내 중3 졸업생 중 20% 가까운 학생들이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하게 될 것이고 입학 준비 학생을 더하면 과반수가 입시준비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기존 특목고 등을 더하면 일반사립고 140곳 중 30여곳이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할 전망이다. 고교입시 부활이다. 2010년 도입되는 고교 선택제 결과 사립 110곳·공립 75곳이 나머지 학생을 둘러싸고 우수학생 쟁탈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결국 학부모들로서는 부활하는 고교입시 때문에 모든 가용 자산을 자녀 입시 준비에 퍼부을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대입학원들이 고입학원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겨울방학인데도 어린 학생들이 국·영·수 공부에 매달려 시들어 가고 있다. 고교 선택제 시행 때문에 내가 속한 서초구의 인문계 고교에서는 겨울방학 동안 하루 15시간 교내 독서실을 운영한다. 교사들은 방학을 반납하고 자율학습 감독을 하느라 생고생이지만 학부모의 호응은 높다. 학교 쪽에서는 2010년부터 시작하는 고교 선택제에 인근 중학교 학부모와 학생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고육책이라고 한다. 서울 강남지역이 이럴 정도이니 여타 지역의 위기감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모두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경쟁과 자율의 교육 정책에서 나온 우리 교육의 단면들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학교들·교사들·학생들 사이에 교육 경쟁력은 유효한 것인가? 과연 고교 평준화는 실패한 정책이고 포기해야만 하는가? 과연 고교 평준화를 시행할 때의 폐해라고 주장하는 것(학력차, 하향 평준화)과 고교 평준화를 폐지할 때의 문제점(고교 서열화, 주입식 교육, 교육 불평등과 계급고착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문제이고 우리 교육을 암울하게 할 것인가 드러내놓고 따져봐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고교 평준화를 찬성하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고교 평준화를 학교 다양화로 포장해 서둘러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이렇게 슬며시 평준화의 막을 내릴 것이 아니라 당당히 공개토론회를 열어 폐지할 것임을 밝히고 학부모 의견을 듣거나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해야 할 것이다.
김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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