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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5 21:28 수정 : 2009.02.05 21:28

허선/공정위 전 사무처장·법무법인 화우 선임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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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경제위기는 시장경제가 상당 부분 실패한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공정거래정책은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경쟁 정책은 경제 평화 때만 필요하고 위기 때는 지금처럼 뒷전으로 밀려야 하는가? 경쟁은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경쟁법은 시장을 위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라고 한다. 경쟁법은 혁신의 바탕일 뿐 아니라 경제민주주의의 보루다.

공정거래 정책은 시장경제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더 빛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쟁법의 집행은 위기 해결의 걸림돌이 아니라 열쇠다. 경쟁은 기업들이 가격을 낮추며 품질을 높이기 위한 혁신을 하도록 강요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좀더 생산성이 높은 새 기업을 영입함으로서 인간의 물질적 복지를 향상시킨다. 이는 역사의 진리다. 경쟁 정책은 경쟁을 확장하는 정책이다. 경제위기 때도 경쟁 정책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 요소라는 점을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제 장관, 기업과 소비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경쟁 정책도 위기 대책과 신축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공정위가 위기 극복을 위해 해야 할 필수적인 정책 다섯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로 경제부처가 내놓는 구제 대책으로 경쟁이 제한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 지원 정책은 한시적이며 비차별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투명해야 한다.

둘째로 시장을 구조적 입장에서 지켜내야 한다. 위기 극복의 처방은 죽을 것을 살리는 데, 현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쟁 당국은 위기 극복의 정책 수단이 시장구조를 악화시켜 장기적 폐해가 구조화하지 않도록 빛을 비춰 줘야 한다. 특히 기업결합 사건은 결의와 정성을 다해 심사해야 한다. 시장의 역사를 보면 불황을 틈타 독점 거대기업이 출현했다. 미국의 석유시장이나 금융시장의 역사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자동차 시장이 독점화됐다.

셋째로 공정거래법의 집행기준과 중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집행해야 한다. 우선 시장경제의 암과 같은 카르텔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결의를 시장에 보내야 한다. 가격 고정뿐만 아니라 공동 감산도 막아야 한다. 이는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온존시키고 생산량 자체를 줄여 소비자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또 기업결합의 엄중한 심사를 통해 도산기업이라 해도 독과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밝혀야 한다. 기업을 위해서 가이드라인을 미리 보여 줘야 한다.

넷째 공정위는 무엇보다 시장을 지켜야지 산업을 지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정위는 위기에서도 카르텔을 막음으로써 경쟁 과정을 지켜야 하고 큰 기업이 작은 경쟁자와 새내기 기업을 밀어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섯째 경제 위기가 극복된 뒤의 시장구조와 기업 경쟁력을 비전으로 제시해야 한다. 불황은 기업들에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실력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별해 내는 유일한 기회다.

이번 위기가 극복된 후 우리 경제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현재의 산업과 기업들이 살아남은, 그래서 ‘구제된’ 시장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재무장하고, 소비자 수요에 민감하고, 크기에 매달리지 않는 기업들로 꽉 찬, 신성장이 발동되는 시장이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공정위가 경쟁법을 얼마나 잘 집행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정위가 다른 나라 경쟁 당국에 비해 과연 올바른 경쟁 정책을 집행했는가를 보여 줄 것이다.


허선/공정위 전 사무처장·법무법인 화우 선임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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