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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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정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연구소 교수
필자는 지난 11일 동일본 대지진 참사 당시 세미나 참석을 위해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의 도호쿠대학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일들은 짧게나마 요약해 14일치 <한겨레> 지면에 전했다. 참사 사흘째 되던 날 센다이 총영사관에서 마련해준 차량을 이용해 그곳을 떠나왔다. 힘들게 버티고 있는 센다이 시민들과 한국인 유학생, 주재원 가족들을 대신해 한국 정부에 몇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사상 최악의 재난에 맞선 일본 정부는 당장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사망자 수습과 행방불명자 구출이다. 둘째가 원전 사고 대책이다. 하지만 정작 사망이나 행불이 아닌, 피해지역의 보통의 이재민들에 대한 구호는 거의 무대책인 상태이다. 이는 참혹한 현장을 직접 겪어본 필자가 가장 피부로 느낀 점이기도 하다.
피해지역의 단전과 단수, 가스공급 중단 등은 장기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석유 등의 생필품 부족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상태라면 피해지역의 한국인 교민들 역시 거의 현지에서 고립된 생활을 며칠이고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우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이들 교민을 일시 귀국시켜 원기를 회복하게 하고 하루빨리 학업과 생업 현장에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세기와 전세버스의 조직적 동원이 시급하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만일 피해지역에서 한국 교민들만 데리고 나간다면, 그동안 교민들이 현지에서 쌓아올린 일본 시민들과의 유대감은 일시에 끊어진다. 일본 사회에서 우리 교민의 신뢰도는 현저히 훼손될 수 있다. 이는 한류를 접하며 한국에 친근감을 갖기 시작한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 또 일본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이 생활하고 있고 이번 지진 피해자들 중엔 다수의 외국인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한국 교민들에게 가는 전세기와 전세버스 안에 구호품을 가득 실어, 피해지역의 일본 시민들과 현지 외국인들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구원활동에 일본어가 가능한 한국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어 일본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협력하는 선례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차세대 교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꼭, 그리고 진지하게 검토해주었으면 한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한국 교민들을 본국으로 데리고 오는 일을 하는 동시에 일부 일본 시민들과 일본에 머물고 있던 외국인들에게도 희망하는 이들에 한해 한국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인천공항은 일본의 피해지역으로부터 일본 국내의 어떤 장소보다 가깝고 안전한 곳이다. 예를 들어 인천 소재 대학 캠퍼스에 구호 캠프를 설치하고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일본 국내와 소통 통로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한-일 정부의 협력과 양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국가의 영역을 넘어 좀더 가까운 협력의 형태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이런 위기상황을 계기로 과거 논의됐던 협력의 틀은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피해지역의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을 우리 정부가 선도적으로 추구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가 거북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만일 그렇다면 협력의 틀을 한-일 양자간 관계로 설정하지 말고 다자간 관계로 확대해보는 방안도 있다. 유엔 등 국제구호협력의 틀을 활용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대범하게 국제사회의 따뜻한 손길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겠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이미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동아시아 차원의 통큰 협력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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