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9 21:28
수정 : 2011.03.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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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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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리비아는 지금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카다피의 수십년에 걸친 독재는 국제적으로 피로현상을 유발하고 국내에서도 반대세력을 키워왔다. 이제 그들은 카다피 정권의 퇴진을 위해 직접적인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느 독재세력이나 그렇듯 카다피는 우월한 경찰과 군대의 힘을 이용해 물리적인 진압을 벌이기 시작했고, 사망자와 부상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이에 평화와 인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가 적절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논해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함으로써 벵가지 등지의 반군 세력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을 방지할 것을 결의했다. 이 결정은 르완다 및 보스니아 내전 등에서 국제사회의 때늦은 대응이 엄청난 인종학살로 귀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발빠르고도 바람직한 대응이다.
특히 안보리의 결의 없이 시작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국제법의 국제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대륙의 영국·프랑스가 의견을 같이하고 러시아와 중국이 기권하는 형태이긴 하지만 사실상 안보리가 군사력 사용을 간접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신속한 대응에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안보리 결의의 긍정적 측면을 무색하게 하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주축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직접적인 민간인 학살을 막기 위한 예방적 활동을 규정한 안보리 결의안의 범위를 넘어서 리비아 전역에 수차례에 걸친 야간공습과 미사일 발사를 진행하고, 카다피의 목숨을 제거할 목적임이 거의 명백한 미사일을 통한 관저 폭격을 감행하고, 나아가 무수한 민간인 피격의 사례를 만들고 있으니,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카다피 정권의 인권유린이나 독재 및 폭정에 대해 국제사회가 분노할 이유는 충분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저마다의 이유로 카다피 정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할 이유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근대 국제사회의 또하나의 중대한 존립원리는 국가주권의 존중과 평화, 공존공영의 정신이다. 무력 군사행동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 등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경우로 제한되어 있다. 국제사회 공동규범인 국제법이나 안보리의 결의안 없이 타국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할 경우 유엔 헌장 및 국제관습법, 제네바협약 등 국제인도법에 심각하게 저촉되는 국제법 위반 행위로 비난받게 되며 그 직접적 책임자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이번 리비아 공습을 주도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그 이행이지만 미국 정부의 목적은 리비아 정부 수반인 카다피를 축출하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안보리 결의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유엔을 매개로 해 인권을 보장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서로를 지원하며 평화와 발전을 위한 협력을 하기 위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한 국익 추구 행위가 종종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봉사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리비아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지지해온 아랍 지역의 국가연합기구인 아랍연맹은 리비아에 대한 공격적 공습에 심각한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과연 국제사회는 일국의 국가적 이권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의 일탈행동을 제어하고 평화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국제규범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유엔 안보리가 합의한 바대로 비행금지구역의 이행을 강제하고, 또 일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이 아닌 국제사회의 질서있는 대응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키우기보다는 해결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혜가 발휘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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