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29 19:53
수정 : 2011.04.2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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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율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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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새 국정기조로 삼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정치적 표어조차 국민의 뇌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 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공정성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그 근거는 출발과 과정이 공평하지 못한 교육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유아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 최근에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유아교육 취학률이 2010년 39.9%에 불과했다.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4~5살 정규 유아교육 취학률 96.3%와 대조된다. 유아교육 진학률이 낮은 것은 물론 경제적인 문제이다. 2010년 말 유니세프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소득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크고 회원국 중 3위라고 한다. 소득격차 때문에 생기는 낮은 유아교육 진학률을 정부 정책이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중 미취학 아동(0~6살)에 대한 정부의 공적 지원율이 0.17%로 회원국 평균인 0.61%를 한참 밑돈다.
유아교육의 효과는 평생 지속되며, 어느 학교급보다도 크다고 한다. 호주에서 약 1만명의 아이를 장기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정규 유아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이 유아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유아교육을 받아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는 한글을 대략 읽고 쓰는 학생에 비하여 유아교육 없이 입학한 학생들은 처지기 시작하고 열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학교의 교육과정도 공평하지 못하다. 교육에는 ‘피그말리온 효과’ 또는 ‘기대자의 효과’가 작용한다. 가령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지능지수가 높다든가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다른 학생에 비하여 그 학생에게 관심과 호의를 갖고 조언·지도를 더 잘하게 되어 그 학생의 성적이 좋아진다는 교육심리학 이론이다. 게다가 학교에 들어가면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는데, 보호자의 학력과 직장을 쓰게 되어 있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정보는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선입감이나 편견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교육기회의 격차는 사교육으로 인해 더 심화된다. 초·중·고 전체 학생들의 사교육 참가율이 2009년에 서울이 80%인 데 비해 읍면지역은 67%밖에 되지 않고, 사교육비 지출액은 서울이 읍면의 두 배가 넘는다. 더욱이 자녀 1인당 사교육비 지출액은 월소득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 가정보다 월소득 500만원 이상 고소득 가정에서 약 5배나 높다.
이렇게 교육의 출발과 과정이 공평하지 못한 것은 교육 결과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난하거나 유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교사의 관심에서 소외되고 공부에 취미를 잃게 되어 수업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수업 태도의 차이는 수능성적과 대학진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2004~2008년간 평균 수능성적이 월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 학생은 257.6점인 데 비해 500만원 이상 고소득층 집단은 291.1점으로 나타났다. 4년제 대학 진학률도 전자가 43.1%인 데 비해 후자는 77.8%였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교육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 10년간 고졸자나 전문대 졸업자의 임금은 4년제 대학 졸업자 임금의 66%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학력별로 임금격차가 장기간 변동하지 않는 것은 역량보다 학력에 의해 임금이 정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교육의 차이는 소득의 차이로, 소득의 차이는 교육의 차이로 연결되어, 가난은 대를 물리게 되고 사회계층간의 불공정은 더 심화되기 마련이다. 교육의 출발과 과정을 공정하게 하고 학력간 임금 격차를 개선하지 않는 한 개천에서 용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름없다.
권오율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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