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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1 19:46 수정 : 2011.05.01 19:46

박찬진 전 주레바논 대사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 사민당·기민당 주도의 독일 연립정부에서 자민당 출신으로 20년 가까이 서독과 통일 독일의 외무장관을 지냈고, 1989~90년 기민한 외교 활동으로 독일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한스디트리히 겐셔 장관의 언급이다. 1970년대 초, 서독이 새로운 동방정책을 추진해 소련·폴란드 내의 옛 독일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사실상 포기하고, 서독의 “독일민족 전체의 배타적 대표 지위” 주장 역시 지양해 동독의 대등한 자격을 인정한 데 대해 불만을 가진 당시 보수 야당과 동독·동유럽 출신 실향민 등을 상대로 한 말이다.

과거 역사의 당위에만 집착해 역사의 진운을 막을 수 없다는 심오한 뜻인데, 남북관계 경색 상황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보수층 지지로 집권한 엠비 정부가 성격이 다른 전임 정부가 추진하던 대북 정책의 일부를 변경하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그 변경의 정도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듯한 양상이라면 남북관계의 장래를 위해 아주 좋지 않다.

최근 남한에서 대두한 남북문제는 대북 인권 공세, 인도주의 지원, 전단 살포, 경제협력 등인데, 이로 인해 남남갈등의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통일을 이룩한 과거 서독의 ‘독일정책’ 등을 참고해 의견을 정리해 본다.

첫째,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 내 각 개인·단체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은 그렇다 쳐도, 북한 당국의 협의 상대자인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서독은 동독 정치범·양심범들을 은밀하고 신중한 교섭을 통해 대가를 지불하고 서독으로 이주시키는 활동은 지속적으로 했어도, 동독에 대해 인권상황 개선을 공개 요구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했다. 대신 1975년 발족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통해 다자 테두리에서 다루는 방법을 택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북한인권법 제정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된다. 인종, 종교, 지리적 원근과 관계없이 조건 없이 돕는 것이 인도주의의 원칙이다. 접경한 지역의 동포가 굶주리는 상황에서 쌀 지원에 갖가지 조건을 붙이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대북 인권 공세에서도 적극적인 미국이,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해 제재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식량 지원을 할 의향이 있음을 비치는 것을 십분 고려해야 한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재상은 1871년 독일 통일에 앞서 느슨한 독일연방을 구성하는 각국과 관세동맹을 체결해 경제 통합을 강화하는 사전 포석을 놓았다. 남한의 잉여 쌀을 북한에 지원함은 우리 농민들의 시름을 크게 덜어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경제 통합을 강화해 줄 것이다. 또한 쌀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계기를 만들어, 후일 그들이 우리나라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다.

셋째, 북한에 대한 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자들의 활동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만하나, 그런 활동이 북한 변혁에 실제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미지수다. 과거 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 끝과 같은 섬세한 느낌”을 가져야 하고, 공연히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서독의 경우 동독인들의 서독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해서 전단을 살포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지만, 설령 그럴 필요성이 있었다 해도 서독의 전단 살포는 유럽 전체 안보를 위험에 처하게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서독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여건을 고려해 다양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동독에 대한 홍보 효과를 거양한 면도 있다.

넷째, 남북 접촉 증대 및 경제통합 강화 차원에서 경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의 경우 1945년 분단 이래로 항상 나름의 경제 교류가 연면히 이어졌다. 서독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는 집권 정부의 성격과 관계없이 변함없는 대원칙이었다.

화가 나는 일이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돌출사건들에 묶여 남북 경협을 계속 표류하게 할 수는 없다. 북한 역시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박찬진 전 주레바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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