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6 19:33
수정 : 2011.05.0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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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기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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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밀어닥친 세계화의 물결은 상품과 자본, 그리고 빠르고 광범위한 노동인구의 이동을 가져왔다. 지난해 한 해에만 2억139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제 나라를 떠났다.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 규제와 관계없이 규제의 변방 사람들의 이동이 확산되고 있다.
저출산과 노동구조의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외국인 노동인력과 이주자가 늘고 있다. 노동이민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민이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불법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인 이주자들이 우리 국민의 직장을 빼앗는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민자들이 자국민의 직장을 빼앗은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원해서 그리된 것이다. 공사 현장, 중소 제조업체 등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에 그 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고, 한국의 대학과 학원이 원했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강사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는 자유시장경제 원리이기도 하다. 많은 선진국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보수정당이 이민정책에 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민정책은 노동수요의 시장논리, 노동안정의 정치논리, 그리고 국제연대의 논리로 이어진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통합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온정적 동화주의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워야 한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로 외국인 이주자를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현재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단순 기능직에 종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 고학력·고생산성 외국 노동인력 유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 산업은 연구개발(R&D)과 정보기술(IT) 분야와 같은 고효율 구조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둘째, 다문화 융합사회로의 전환을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적정 체류기간이 지나면 이주자들에게 투표권 및 시민권, 복지 혜택을 부여한다. 물론 과세도 평등하게 시행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는 시장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권리와 요구를 시장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중재하는 일이다. 이미 시장으로 편입된 이들을 정치적으로 배려하지 못하면, 얼마 전 프랑스 폭동에서 보듯 인종·종교·계층 간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정치권이 나서서 갈등 요소들을 미리 제거하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수용할 공간과 매체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유입된 외국인 이주자들을 통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활용하는 일이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유학·이민시켜 친미정책을 유도한 바 있다. 한반도 전문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가 그 일을 담당했다. 세계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를 연구하는 지역 전문가 시스템을 이주 외국인과 본국 간의 네트워크에 접목하여 국제 연대의 상호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내재화하는 일이다. 융합은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문화도 융합된다. 문화적 융합의 실험장은 다름 아닌 다문화정책의 현장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외국인 이주자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에게로 시집온 다문화가정 주부들은 황폐해져가는 농촌을 지켜내는 우리 사회의 보석 같은 존재이다. 지난달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사회상’ 보고서를 보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43점을 받아 회원국 평균인 61점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관용과 배려의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다문화가족도 엄연한 우리 국민이라는 현실주의적 인식의 바탕 위에서 다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허병기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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