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9 19:52
수정 : 2011.05.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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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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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도입된 3색 신호등을 놓고 찬반 논쟁이 거세다. 새 신호체계의 사례로 거론되는 독일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한 필자의 견해는 “맞지만 잘못 적용되었다”이다.
3색 신호등의 기본 취지는 진입로별로 적용되는 교차로 신호체계를 차로별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우선 효율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먼저, 효율성 측면에서 교차로의 용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 교차로 신호체계는 4개 진입로별 좌·우·직진으로 구성된 총 12개 방향의 교통량에 녹색시간 길이를 배정하는 것이다. 이때 교통량이 비슷한 방향의 교통류끼리 동시에 녹색시간을 받게 되면 차로별로 불필요한 대기시간을 줄이게 된다. 예를 들어 운전자들은 반대편 차로의 직진 교통류가 없음에도 좌회전을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경험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이 경우 차로별 3색 신호등을 도입하면 반대편 직진 차로의 신호를 일찍 중단시키고 좌회전 차로에 좌회전 신호를 먼저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차로별로 신호등을 적용하면 12개 방향별로 다양한 신호조합이 가능하며, 이는 운전자의 통행시간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음으로 안전성 측면에서 교차로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도시의 교통사고 중 교차로에서 발생하는 비율은 약 30% 수준이다. 이 중 녹색등이 변경될 때 교차로에서 진출하는 차량과 진입하는 차량 사이의 충돌 사고가 가장 많다. 교차로 사고는 치상률이 매우 높으며, 사고 책임 소재를 놓고 운전자 간 다툼도 가장 많다. 교차로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국내 신호체계가 진입로별로 획일적인 3초의 황색시간을 적용하는 것이다. 황색시간은 녹색시간 마지막 순간에 정지선을 출발한 차량이 교차로를 빠져나간 뒤에 다른 차선의 녹색신호 차량이 진입하도록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진입로별 신호체계에서는 12개 교통류 간 필요한 황색시간을 반영하는 것이 어려우며, 획일화된 3초의 황색시간에 따른 사고 위험이 높다.
이와 같은 3색 신호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진행되는 시범사업은 그 적용이 잘못되었다.
차로별로 신호등을 운영하려면 차로별로 신호등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 시범운영중인 서울 세종로와 같은 광폭도로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광폭도로의 경우 교통량이 많으며 신호등 위치가 높아 운전자가 자신의 진행 차로에 적용되는 신호등을 분별하기 어렵다. 차로별 신호등은 차로 수가 적고 방향별 교통량 차이가 큰 소형 교차로에서 먼저 적용한 뒤 점차 대형 교차로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교통신호체계는 이번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신호체계는 단순한 신호등 개수뿐만 아니라 교차로의 교통류 특성에 적합한 제어논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며, 이에 맞춰 교차로의 기하구조에 알맞게 신호등 위치와 크기 등이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호등을 변경할 때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사전 조사와 사후 결과 예측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제거한 뒤 실제 적용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교차로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신호체계를 설계한 뒤, 이미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 교차로 신호체계 시뮬레이션 기법 등을 이용해 사전 검증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호체계는 온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중요한 공공시설이다. 전국의 자동차 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선 지금, 수많은 운전자들이 교차로에서 매일 겪는 시간낭비와 위험을 고려할 때 효율적인 신호체계 구축은 매우 시급하다. 다만 지금과 같은 행정부처 위주의 상의하달 방식을 벗어나, 시민과 전문가들의 활발한 참여로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정책 결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신호체계는 전문가와 시민의 토론이 배제된 정치논리와 탁상공론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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