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0 19:57
수정 : 2011.05.10 19:57
|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위원장
|
우리의 기대를 한껏 모았던 추신수 선수가 커다란 실수를 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동료들과 연승 축하모임을 즐긴 뒤 음주운전을 한 것이다. 사건 후 곧바로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사과했다지만 누가 봐도 잘못했다. 참으로 안타깝다.
박찬호와 김병현이 미국을 떠난 뒤 추신수는 유일한 한국 출신 메이저리거다. 그는 만년 하위권이던 인디언스가 시즌 초 가장 먼저 20승(8패)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최고 승률을 기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안타까움이 더 큰 이유다. 더구나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3할 타율을 올리고 2009년부터 2년 연속 20-20 클럽(20홈런과 20도루)에 가입까지 하지 않았던가. 올해 더 좋은 기록을 올릴 걸 기대하는 한국 팬들에겐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추신수는 사건 이후 첫 4경기에서 안타 하나도 못 때렸다. 다행히 주말에는 역전 2루타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추신수가 음주운전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디언스를 가을잔치에 나갈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듯하다. 그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것 정도다.
나는 지난해 12월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손시헌 선수의 결혼식에서 추신수 선수와 짧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참 맑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가 출연한 ‘무릎팍 도사’를 보면서 지성을 갖춘 선수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그가 영어 하는 것을 보고 ‘노력형’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그를 아는 것의 거의 전부다.
하지만 나 역시 오랜 미국 유학생활을 한 터여서, 미국에서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그것도 한국인 선수가 겪을 험난한 길을 나름대로 상상할 수는 있다. 그는 오랜 타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광활한 북아메리카 이 도시 저 도시를 비행기로 옮겨다니며 야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좋은 성적을 올릴수록 승리에 대한 강한 절박감과 동료 선수들의 시기와 질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으로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속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별로 없다. 자연히 술로 푸는 경우가 잦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연승의 기쁨을 술로 만끽하다 도를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또 로스앤젤레스 등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과 달리 오하이오는 대리운전도 흔치 않다.
체포 후 공개된 동영상 속에서 추신수는 “나는 야구선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내 삶은 끝이다”라고 애원한다. 사건 후 언론은 ‘추신수 망신살’이라는 제목으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런데 나는 추신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너무나 애처로웠다. “나는 끝이다”(I will be done)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마음이 찡했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체포 당시 얼마나 좌절하고 절망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게다가 경찰에서 비굴하게 굴었다는 식의 보도를 보고는 그가 안쓰럽기만 했다. 까딱하면 선수생활을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늠름한 기상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지나친 것 아닐까?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몇 말씀 드리고 싶다.
먼저 미국 법원에 호소한다. 추신수의 음주운전이 이번이 처음이라면 한번 용서하기 바란다. 언어와 문화 차이 등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외국 선수에게 관용을 베풀어주기 바란다. 둘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부탁한다. 현재 메이저리그에 한국 출신 선수는 추신수뿐이다. 야구의 동서 가교, 더 정확하게는 ‘한-미 가교’를 위해 추신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었으면 한다. 셋째, 한국 언론에 제안한다. 가혹한 비판은 자제하기로 하자. 아울러 지나친 관심과 기대, 찬양은 되레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
추신수는 다시는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가 이제 출발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도와주자. 그의 무한한 미래가 우리를 감동시킬 것이라고 나는 감히 믿는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위원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