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5.13 20:14 수정 : 2011.05.13 23:16

정석희 한국전쟁유족회 총괄사업단장

1958년은 이승만이 영구집권을 꿈꾸며 4선의 대통령에 대비하여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이승만의 출생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영특한 두뇌와 열혈 청년 시절의 왕성했던 독립투쟁 등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불세출의 영웅적 모습을 담아낸 홍보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을 둔 우리나라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 할아버지에 대한 어린이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내가 쓴 글도 뽑혀서 여러 선생님과 전교생 앞에서 읽힌 일도 있다.

그 뒤 몇년이 되지 않아 1960년 4·19 민주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에 대한 나의 어린 시절 환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이승만은 인자한 대통령 할아버지가 아니라 지독한 독재자이고 학살자였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쫓겨났지만, 그동안 그가 저지른 인권유린은 두고두고 파헤쳐질 일이다. 한국전쟁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군(유엔군 포함)이 실제 전투에서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전사자는 18만명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이승만이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비무장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적법 절차 없이 학살한 인원은 100만명이 넘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때 이념이란 이름으로 이승만이 저지른 숨길 수 없는 잔악상의 진실이며, 독일의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킬링필드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학살의 원죄가 이승만에게도 있었다.

제주4·3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미 밝혀진 사건 말고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하여 지난 5년 동안의 짧은 기간에 전국 각지의 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 부역혐의자학살사건 등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긴 하지만 진실로 밝혀졌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1년, 4·19 민주혁명이 일어난 지 꼭 51년이 되는 해다. 이때를 맞추어서 최근 이승만기념사업회란 곳에서 주요 일간지에 내건 큼지막한 광고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다.” “이승만 기념관 없이 국격을 논하지 마라.” 그리고 서울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기념사업회의 일꾼 중에는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방송에서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승만과 제1공화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2011년도 10대 기획물의 하나로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현 정권 들어서 뉴라이트 세력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니 하여 ‘이승만 국부론’을 확산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바로 한달 전에는 더 공격적인 해프닝도 있었다. 이승만기념사업회가 4·19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선전포고라도 하듯이 일방적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4·19 묘소 참배도 강행하려 하였다.

이는 비민주적인 독재를 부정하고 국가범죄를 부인하는 역사왜곡 행위이며 우리 헌법의 근간조차 무시하는 처사이다.


이승만이 아무리 한국 현대사에서 비중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는 1960년 4·19 민주혁명을 통하여 독재자의 오명을 쓰고 이미 단죄된 인물이다. 아무리 엉터리 나라라 하더라도 수도 한복판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비무장의 백만 양민을 적법 절차 없이 학살한 원흉을 주인공으로 공영방송이 어떤 특집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4·19 민주혁명 이후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숱한 민주화의 진통을 겪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균형 있는 좌우 날개를 펴지 못한 채 한쪽 날개만으로 기형적인 비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석희 한국전쟁유족회 총괄사업단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