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19 19:42
수정 : 2011.10.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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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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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자격시험도 사법시험처럼
합격 기준은 없고 합격자 수만
정해놓고 시험을 보면 로스쿨들은
‘변시준비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서 합격기준은 이미 75%로 정해진 합격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합격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즉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이면 변호사가 될 수 있는지를 변호사자격시험(변시) 응시자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합격기준이 없으니 학생들은 ‘죄수의 딜레마’ 속에 놓여 있다. 합격률만 주어진 상대평가 하에서는 서로가 얼마나 공부할지 모르니 모든 학생이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무한경쟁에 몰입한다. 과도한 시험기술상의 경쟁이 벌어져 합격선(커트라인)이 지나치게 높아진다.
이것은 로스쿨 도입 근거에 정면으로 배치되며 현재 로스쿨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 과거에는 변호사 수 제한이 보장해주는 독점이 과도한 수의 응시생들을 사법시험 경쟁으로 유인했고 그렇게 과도하게 많은 경쟁자들의 상위 1000명만을 합격시켰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법시험 합격선(최저점수 합격자의 능력)은 시험기술적인 면만 보자면, 변호사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웃도는 것이었다. 로스쿨 제도의 근간인 변호사자격시험의 취지는 기술적 과잉적합성은 포기하더라도 윤리성·국제성·다양성·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군을 양적으로 충분히 양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변시도 사법시험처럼 합격기준은 없고 합격자 수만 정해놓고 시험을 보면 로스쿨들은 거대한 ‘변시준비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합격기준이 있어야 이를 기준으로 시험공부도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고 또 자유롭게 자신의 전문성·윤리성·국제성·다양성 계발에 학창생활을 할애할 수 있다. 또 합격기준이 정해진다면 법무부와 교육부가 합격률과 물물교환한 강제된 상대평가도 없어지게 되니 학생들이 점수 따기 쉬운 과목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학점 사냥개’가 되는 문제도 막을 수 있게 된다.
하루빨리 합격기준을 공표하여 학생들을 ‘죄수의 딜레마’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정확히 하자면, 문제은행을 만들고 그 문제은행에서 난이도 A 몇개, B 몇개의 문제조합을 몇십분 안에 풀어서 몇점 이상만 받으면 그 과목에 변호사로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이 검증되는 것인지를 공표하고 각 난이도의 샘플문제들을 공개하여 국민들에게 그리고 응시생들에게 확정해 주어야 한다. 이미 지금 사법시험도 문제은행을 원자료로 출제되고 있는데 이 문제원형들에서 구체적인 문제조합을 추출하여 각 문제조합에 적용될 시험시간, 모범답안, 합격점수를 설정하여 공표하여야 비로소 합격기준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1기 변시는 합격률이 정해져 있으므로 합격기준을 정하는 것과 배치될 수 있다. 하지만 시도는 해야 한다. 한번 무한경쟁 상대평가로 시험을 보면 2기 변시가 절대평가로 바뀌더라도 그 합격기준은 형평성 논리에 따라 1기 변시의 합격선과 비슷하게, 즉 과도하게 높게 설정될 것이다. 그러면 전국의 로스쿨들이 교육과정을 이 합격선에 맞추어 시험준비 중심으로 재편할 것이고 로스쿨 교육의 파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교육과정은 다시 2기 및 3기 시험의 합격기준에 상향압박을 가할 것이다. 악순환이 완성된다.
반드시 1기 시험부터 합격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로스쿨협의회가 합격기준을 설정한 뒤에 75%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도 이 합격기준을 충족하면 특례로 합격시켜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또는 실제로 합격은 안 시키더라도 최소한 논리상의 합격기준은 정해서 2기·3기 시험의 정상화를 준비해야 한다.
‘커트라인 높은 게 뭐가 나쁘냐’는 볼멘소리는 거부한다. 그 높은 커트라인을 핑계로 ‘아무나 할 수 없다’며 변호사 수를 통제해온 것 아닌가. 로스쿨 도입의 결과가 결국은 예비변호사군이 연수원 정원 1000명에서 로스쿨 총정원 2000명으로 늘었을 뿐 1억 가까운 비용과 3년의 시간이라는 진입장벽만 더해진 것이라는 서민들의 원망에 귀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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