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07 19:33
수정 : 2011.11.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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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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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연합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맞는
정치행위로 완전히 승인하면서도
이로부터 발생하는 비용 문제 해결을
불법화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1심 재판이 진행중인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선거 및 공직선거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치학적 관심사다. 따라서 2억원이라는 돈이 오간 것 자체보다는 이 사건을 둘러싼 전체적 맥락과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일부로서 헌법적 최고원리인 민주적 기본질서의 구현에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또한 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하위법 체계임은 당연한 노릇이다.
공직선거법의 기본 취지는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통해 가능한 한 국민의 이익 실현에 가장 적합한 공직자의 선출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후보자들이 선거참여를 통해 초래될지도 모를 재산상의 심대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선거비용 보전을 통한 선거공영제를 들 수 있다. 나는 이를 민주주의의 비용 문제로 규정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비용 문제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조차 골머리를 썩일 정도로 자고이래로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문제였다.
그렇다면 현행 공직선거법에 민주주의의 비용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가 잘 구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법적 규정의 방대함에 비해서 중대한 미비사항이 있기에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자인 후보자가 무엇인지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후보자가 무엇인지 규정되어 있지 않은 터에 예비후보자라는 용어가 수차례나 버젓이 쓰여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는 경우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122-2조 2항의 첫번째 해당사항이 바로 예비후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보자로 나섰다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후보 단일화 등 다양한 정치연합으로 중도사퇴한 후보의 비용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치연합은 현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정치행위의 하나로 완전히 합법적이다. 그렇다면 정치연합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합치하는 정치행위로 완전히 승인하면서도 이로부터 발생하는 민주주의의 비용 문제 해결을 불법화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본질은 바로 정치연합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정치과정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로부터 발생한 민주주의의 비용과 관련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억지로만 취급될 수 없음은 선거라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오랫동안 시행해온 미국 사례를 원용해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 공직선거법은 후보자 및 예비후보자에 대한 정의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연합을 통해 상대방 후보자의 비용을 보전하는 행위를 완전히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비근한 사례로 지난 미국 대선 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에서 패색이 짙자 본선에서의 적극적 협력을 조건으로 선거비용 보전을 해줄 것을 힐러리 클린턴 쪽이 요청했고, 버락 오바마 진영은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선거비용에서 회계처리했다. 그러므로 이런 조건에선 한국의 공직선거법상의 후보자에 대한 사후매수와 같은 규정은 정치적 코미디로 취급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곽 교육감 사건의 최종 결과는 재판부가 과연 어떠한 관점을 채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그 조항이 불비하긴 하지만, 선거공영제에 따른 선거비용의 원칙을 폭넓게 적용하여, 곽 교육감 개인에겐 주관적 선의이며 객관적으로 후보자 간의 정치연합에 따라 발생한 민주주의 비용의 관점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더이상의 정치적 순교자는 불필요하다. 사법부는 차제에 현행 공직선거법상 위에서 적시한 미비점의 개선을 입법부에 촉구함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진리를 수호하는 보루로 남길 바란다. 역사는 판결문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만대에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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