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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5 19:26 수정 : 2011.11.25 19:26

서상진 천주교 수원교구 서호성당 주임신부

서상진 천주교 수원교구 서호성당 주임신부

미국과 맺는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무역협회·경영자총협회 등과 자동차업계에서는 환영을, 농업·축산업 등에 관계되는 사람들은 반대를 표현하는 양극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의 이익을 위하여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못하며, 공존과 공동선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전제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전에 보면, 평화란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세상이 평온한 상태’라고 쓰여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평화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나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평화는 평화이지만, 이는 지극히 소극적 평화인 것이다. 평화는 이와 같은 소극적인 평화와 적극적인 평화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쟁이나 분규, 투쟁 등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평화를 소극적인 평화라고 한다면, 적극적인 평화는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조건인 일치와 나눔을 위하여 노력함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싸움 없는 평화와 화합으로서의 평화로 나누어 설명하며 화합으로서의 평화야말로 진정한 평화라고 하였으며, 아인슈타인은 ‘나는 싸우는 평화주의자’라는 말을 남겼다. 간디는 평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참된 평화는 긴장이나 압력, 억압 등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었는데 힘이 센 아이가 혼자서 많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어른들은 ‘나누어 먹으라’고 말한다. 힘이 센 아이는 많이 챙기고 힘이 약한 아이는 조금 챙긴 뒤에 각자 싸우지 않고 먹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평화는 공정하게 분배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평화라는 말 자체가 평평할 평(平), 화목할 화(和)이고, 화(和)는 쌀 미(米)에 입 구(口)로 되어 있기에, 평화란 모두가 함께 평평하게 나누어 먹는 것이며, 또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이루는 시작일 것이다.

루카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호화스럽게 살아가고 있으며, 종기투성이의 거지 라자로는 그 대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 둘 사이에 싸움이나 격정, 미움이 있다는 말도 없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면서 평화롭다고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거짓 평화, 부정적 평화인 것이다. 부자가 자발적으로 옆에 있는 거지 라자로를 보고 그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일 것이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를 말하며 잠잠하게 있거나 그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거짓 평화로 치장된 안주이거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위축이거나, 이익을 얻기 위한 위선이다. 우리는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무엇인가 움직여야 한다. 과자를 혼자 먹겠다고 챙기고 있는 힘이 센 어린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당연하듯이, 일부 특권층만을 위하거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것이기에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통하여 외쳐야 하고 정의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물론 “불리한 평화도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낫다”는 에라스뮈스의 표현처럼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그러나 강경하게 우리는 외쳐야 한다. 이 땅의 정의를 위하여, 그리고 정의가 바탕이 되는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 한 방법이 촛불을 들고 모이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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