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30 21:09
수정 : 2011.12.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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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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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출범에 부쳐
12월1일로 종편의 역사가 시작됐다. 개국 날짜를 못박아 놓고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밀어붙이더니 드디어 종편 4사가 모두 방송을 시작했다. 이럴 때 축하의 박수라도 보내야 할 텐데 세상 민심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첫날 오후 개국 공동축하쇼를 하고 대통령까지 초청했다고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그들만의 잔치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편 4사가 개국쇼에서 ‘더 좋은 방송’ 운운하지만 ‘더 나쁜 방송’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조중동매 방송’으로도 불리는 종편 방송은 ‘종합편법방송’이나 다름없다. 국회에서 온갖 탈법과 위법적인 절차로 날치기 처리된 언론관계법(미디어법)에 기대어 태어난 방송이다. 절차상 하자가 있는데도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후 종편 탄생을 위해 온갖 특혜와 유·무형의 압력을 총동원했다. 결과적으로는 공영방송도 아닌 민간 상업방송을 무더기로 의무 재송신하게 하는 사상 초유의 특혜를 주었고, 막강 언론사를 배경으로 하는 종편사들에 광고영업을 마음대로 하게 했다. 종편 채널을 방송해주는 케이블과 위성방송 사업자들에게는 다른 채널들을 빼서라도 좋은 채널 부여를 종용하고, 채널 번호도 정해지지 않고 개국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종편 개국을 고지하라고 압박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종편들은 방통위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12월1일 동시 개국하게 되었다. 일부 종편사는 미처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일단 개국부터 했다고도 한다. 일부 종편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처로 자신들의 방송이 그해 11월30일 강제 종방됐으니, 그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12월1일 개국했다고 한다. 그럴듯한 명분이다. 당시의 그 억울함을 안다면 이제는 정말 ‘더 좋은 방송’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종편이 ‘더 좋은 방송’은커녕 ‘더 나쁜 방송’이 될까 걱정스럽다. 그런 우려는 단순한 개인적 감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 상황에서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가장 큰 우려는 종편 모두가 하나같이 보수적인 방송매체라는 점이다. 조중동매 보수신문이 조중동매 보수적인 방송까지 하게 된 셈이다. 보수적인 현 정권이 사장 인사를 통해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까지 틀어쥐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큰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모두가 한나라당에 가까운 보수매체들이다. 한나라당은 언론관계법을 처리할 때 방송에 대한 소유 규제 완화를 통해 신문사들도 방송에 진출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확대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가 되었다. 매체 구도가 보수 획일화로 바뀌었다. 머잖아 내년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있다. 혹여 종편 개국을 서두른 이유가 그런 선거에 대비한 포석이라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또다른 우려는 종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종편 개국은 제한된 방송광고시장에 힘센 ‘4룡’이 더 뛰어든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방송산업의 공정경쟁 질서가 무너지고 시장 왜곡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 중소 매체들이 대부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편은 시청자들이 보기엔 지상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방송이다. 그런데도 종편이란 이유만으로 의무 재송신, 중간광고 허용, 방송과 광고 시간, 내용 규제 등에서 많은 특혜를 받았다. 그렇다고 종편이 성공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사정이 어려워질 때 종편이 혹여 언론의 힘을 이용하여 비정상적인 거래를 하거나 정부나 기업, 광고주 등을 압박하게 되는 경우, 그것이 우리의 언론 질서는 물론 시장 질서까지도 크게 교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되는 종편이 끝까지 살아남고자 할 때 나올 수 있는 많은 무리수를 생각하면 더더욱 걱정스럽다.
또한 종편은 우리 정신문화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가 않다. 종편 방송은 방송사들 간의 무한경쟁에 불을 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방송 프로그램은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이 될 것이다. 드라마와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더욱 넘쳐나게 될 것이고,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더욱 연성화될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시청자 국민의 마음에 약이 될 리 만무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편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 같다. 오히려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그런데도 엠비(MB) 정권이 그렇게 무리수를 두면서 끝내 종편을 출범시킨 까닭은? 아무래도 그것은 조중동매와 엠비 정권 한나라당이 같은 배를 탔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있으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제발 기우이기를 바라면서 지켜볼 일이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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