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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6 19:38 수정 : 2012.01.16 19:38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최고은 작가의 죽음으로 드러난
영화산업의 불편한 진실 바로잡을
훈련 인센티브제는 제3의 산업모델
수립의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다

몇해 전 한 영화제 수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가 ‘나는 영화 스태프들이 잘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먹어준 것밖에 한 일이 없다’는 수상소감으로 널리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밥을 차린 영화노동자들의 빈곤과 시름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밥을 차려준 사람은 더욱 힘들게 살고 밥을 맛있게 먹은 사람은 잘 먹어줬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개런티를 받는 불편한 진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작년 초 유명을 달리한 최고은 영화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에 해답의 일단이 숨겨져 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가 지병을 앓고 있긴 했지만, 그전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기에 병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유망한 영화작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좋은 영화라는 밥상을 차린 스태프들에게 합당한 노동의 대가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는 지난 10년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이러한 발전의 시발점을 제시한 영화가 바로 강제규 감독의 1999년 작품 <쉬리>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째서 <쉬리>인가? <쉬리>의 성공을 통해 한국 사회가 영화의 산업적 측면에 실질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얘기는 다른 말로, 영화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망한 경제영역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말과 동일하다.

여타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성장을 거듭하게 될수록 영화산업 부문에 종사하는 인력이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양대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 및 정보기술(IT)·정보통신 관련 산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용이 늘어나고 처우도 개선되며 노조 설립 등 노동 3권이 보장되는 게 일반적 발전의 경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 영화산업은 지난 10년간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함과 동시에, 영화산업의 성장에 비례하여 영화산업 인력이 그만큼 확충되었음에도, 성장의 과실은 영화산업 노동자들에게 고루 확산되지 않았다.

영화노동자들의 복지 수준은 가히 충격적이다. 노조 설립 및 임금·단체협상도 최근에야 이루어졌다. 1년에 6개월 이상 실업상태이며, 고용된 반년의 임금 수준 역시 1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는 현행 노동법상의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며 여타 산업과 비교했을 때조차 최저 수준이다.

영화산업노조의 수년간의 헌신적 노력 끝에 다행히도 영화 스태프의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는 길이 올 초부터 열리게 되었다. 영화 스태프를 위한 훈련 인센티브제 실시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형 ‘앵테르미탕 제도’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어로 휴지기를 뜻하는 앵테르미탕(intermittent)은 1958년 프랑스 드골 정부하에서 시행되기 시작한 문화예술인의 생계 안정을 위한 정책을 지칭한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문화직업적 특수성을 인정했던 프랑스의 그것과 달리 한국형 앵테르미탕은 노동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일환으로 규정할 수 있다.

영화산업의 고용형태는 여느 산업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프로젝트별 고용으로 취업기간과 실업기간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훈련 인센티브는 실업기간에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훈련 수료자에게 기초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스태프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급변하는 매체환경에 적응해나가고, 궁극적으로 지식기반 경제의 핵심으로 육성되어야 할 영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열악한 처우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스태프의 기초생계를 보장하여 산업 이탈을 막을 수 있다. 영화산업과 영화노동자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인 한국형 앵테르미탕의 도입은 향후 할리우드와 유럽식 산업제도의 특성을 한데 아우르면서 영화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제3의 산업모델 수립의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 상황은 노동에 적극 투자하는 나라만이 지속가능함을 잘 보여준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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