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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5 19:46 수정 : 2012.02.15 20:44

김명신 서울시의회 의원 교육위원회

어른도 8시간 근무가 정상인데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으로
이어지는 하루 15시간 학습에
숨쉴 여유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고작 16년… 행복하고 신나게 살아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어제 서울 강남 아파트단지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숨을 거뒀습니다. 그 학생은 컴퓨터에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 힘들다’고 부모에게 보내는 유서 내용의 동영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자살을 하고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이 초개같이 생명을 버리고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폭력예방대책이라며 경찰력을 동원하는 요즘, 이를 보란듯이 무시하며 또 한 생명이 아파트 화단으로 몸을 던진 것입니다. 그 학생은 몸을 던지기 전, 112에 신고도 하고 그 전에 평소 하고 싶었던 머리 염색도 하고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만나며 짧은 인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먼저 간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그 학생이 사는 곳은 전국 대부분 학부모가 돈 있으면 살고 싶어하는 강남구 중산층 아파트입니다. 그 학생이 재학중인 학교는 고교선택제라며 야단스레 설립한 강남구 소재 자율형사립고인 ㅎ고등학교입니다.

그런데 왜 강남구에 사는 공부 잘하던 그 학생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최근에 학생 자살 사건을 겪으며 그 학생들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살을 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대학 입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모들의 잔소리, 학교의 입시교육과 성적에 대한 채근질이 원인 중 하나인 것입니다. 현 정부는 5·31 교육개혁 이후 역대 정부들이 내세운 교육의 수월성을 심화시켜 학생들을 경쟁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어린 학생까지 문제집 풀이에 열중하는 ‘교육 불가능’ 상태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사고와 학교선택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울시내 특목고가 18곳, 자율형사립고가 26곳, 일반계고가 186곳입니다. 특목고와 자사고로 학생들이 대거 빠지자 서울시내 일반계고는 슬럼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사고는 자사고대로 흥행에 실패하여 워크아웃을 당하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사고가 5곳인 강남의 경우 일반계고의 학급당 학생 수는 다른 지역(35명)보다 많은 38~39명입니다. 학교선택제로 다른 지역 학생이 유입되거나 자신들이 강남에서 밀려날 것에 불만을 가질 강남 학부모들을 회유하기 위한 조처입니다. 그러나 한 학급에 학력도 다 다른 고등학생 40명을 모아놓는다는 것은 수업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수업이 가능하겠습니까?

서울시내 학교선택제를 실시하면서 강남북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구호와는 달리 중3 학생 중 다른 지역 학교를 선택한 학생은 10% 미만에 불과합니다. 다른 지역 학교를 선택해봐야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고등학교는 특목고·자사고로 서열화된 마당에 인문계고끼리 도토리 키 재기를 해 봐야 소용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경쟁은 합니다. 무한경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교의 서열화, 기피 학교 양산 등 여러 부작용에도 학교선택제는 근거리 강제배정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으로 폐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 대부분이 하향평준화 논리로 세뇌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선택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찬성과 반대가 50.4% 대 49.6%라는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과감하게 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도 일선학교 반발로 자리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무지스럽게 한국 교육과 서울 교육을 재단하고 있을 때 학생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타살인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학생 자살은 학생의 나약함 때문이라며 비난합니다. 때로는 자살 원인으로 우울증을 지목합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우울증이었던 사람이 어디 있으며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으로 이어지는 하루 15시간 중노동 학습에 학생들이 숨쉴 여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른도 하루 8시간 근무를 권장하며 이를 초과하면 수당을 받거나 사용자가 미안해합니다. 그런데 한창 뛰고 놀고 신나야 할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억압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강남 삼성병원 영안실에 담임교사가 지키고 있다 해서 영안실로 갑니다. 먼저 간 학생의 명복을 슬픈 마음으로 빌어보지만 안타깝고 당황스럽습니다. 입시교육의 고통을 줄이고 제도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고자 시의회 교육위원으로 지난 1년 반 일했지만 입시교육의 고통을 제대로 줄이지 못했습니다. 한없이 죄송합니다.

김명신/서울시의회 의원·교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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