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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0 19:26 수정 : 2012.02.20 19:26

조명래 단국대 교수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시민사회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탈토건, 탈재벌, 탈빈곤, 탈중앙, 탈핵을 구현하는 정치적 쟁투로 규정하고 나섰다. ‘탈’(脫) 의제들은 지난 50년간 한국 사회를 규정하고 왜곡해온 멍에로부터 해방을 표방한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토건주의, 친기업주의, 물질주의, 중앙집권주의, 반생명주의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는 또다른 ‘잃어버린 시간대’에 머물게 되었다. 2012년 선거는 50년간의 개발지상주의 혹은 성장제일주의 시대를 마감할 절호의 기회다.

‘탈’ 의제들은 그간 진보정당의 전유물로,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질적 전환을 위해 이제 더는 회피할 수 없는 필수 의제들이다. 탈핵이 그중에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선도의제에 해당한다. 탈토건, 탈재벌, 탈빈곤, 탈중앙 모두가 만나는 지점이 탈핵이라는 뜻이다.

탈핵은 일차적으로 핵에너지 의존으로부터 탈피를 지향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에너지 과소비를 수반하는 과잉생산과 물질만능주의 생활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이를 사회적으로 지탱시키는 재벌독점 및 중앙집권 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필요로 한다. 핵은 ‘지구생명의 안전’을 담보로 따 먹는 독과일과 같은 것이어서 반생명적이면서, 동시에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어서 반평화적이다. 생명과 평화의 토대를 굳히기 위해 탈핵은 필수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탈핵은 서구에서 1960년대부터 가장 ‘급진적인 정치 의제’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정책대안으로 풀어가고 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탈핵 열풍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앞장서고 있다. 2022년을 탈핵원년으로 선포한 독일은 그때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하고 핵에너지를 대체할 대안에너지 개발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뒤늦게나마 탈핵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듯하던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2050년까지 현 54기의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전격 발표했다.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거슬러가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은 이미 핵발전 설비용량 세계 6위, 전력생산량 중 핵발전 비중 세계 4위, 국토면적 대비 핵발전 설비용량 세계 1위의 나라다. 이럼에도 한국 정부는 2024년까지 14기의 원전을 더 지어 핵발전의 비중을 48.5%로 높이는 무모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아랑곳 않고 정부는 핵발전 확대정책을 더욱 공고히 했고 유엔총회에까지 가서 핵발전 확대 입장을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2030년까지 핵발전소 80기를 수출해 세계 3위의 핵발전 수출강국을 이룩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이 모든 입장은 ‘녹색성장’과 ‘녹색경제’란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데, 그 뒤엔 통치권자를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핵 카르텔이 있다. 이도 넓히면 토건국가의 지배구조와 맞물린다. 이러한 권력구조의 해체 없이는 탈핵은 불가능하다.

탈핵이 탈토건, 탈재벌, 탈중앙 등과 맞물리는 지점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한 성장제일주의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탈핵이 핵심 실천수단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풀어야 할 중추매듭으로 인지되면서 탈핵의 정치세력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 43개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모여 선포한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시선언’은 대표적인 예다. 탈핵을 정강의 핵심으로 삼는 녹색당의 출범은 운동정치에서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학계, 법조계, 종교계, 언론계 등에서도 유사한 행보가 있다. 정작 제도 정치권만 이에 둔감하다. 그중에서 집권여당은 더욱 그러하다. 현 토건정권의 집권세력은 핵에너지를 녹색에너지로 부르는 무지함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정도다.

2012년 선거는 탈핵으로 모아지는 한국 사회의 질적 전환을 촉진할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선거를 주도하는 주류 정당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공약이나 공천 과정은 ‘탈핵의 정치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핵에너지를 석유정점 이후의 대안 혹은 녹색성장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나, 탈핵사회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인물의 영입과 공약을 통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여와 야,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2012년 선거는 그렇게 해서 ‘탈핵의 정치화’를 본격적으로 여는 축제적 혁명이 돼야 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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