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07 19:35
수정 : 2012.03.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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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화 부산대 명예교수·미국 비살생세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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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교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2·29 북-미 합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 농축 활동과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이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서 검증되면 미국은 24만t(1개월에 2만t씩)의 식품을 제공한다.” 미국은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과 식품지원을 과대 강조 또는 포장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 모든 것은 결실 있는 대화가 진행중에만 잠정 중단한다’며 북-미 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는 무엇보다도 대통령 선거를 북한의 핵실험 없이 조용히 성공적으로 치러 당선되고 싶으며, 김정은 역시 핵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식품지원과 외교적 성과를 동시에 성취하는 일석이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3월 7∼9일에는 미국의 시러큐스대학에서 한반도 관련 국제회의를 여는데 이 회의에 남북한, 미국 등의 고위 관리와 민간인 등이 이례적으로 함께 참여한다. 미국에서는 중-미 화해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와 전 대통령 후보 존 케리, 한국에서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 참여하고 도널드 자고리아 헌터대 교수가 세미나를 주도한다고 하는데, 엠비정부 쪽에서는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만이, 그것도 옵서버로 참여할 뿐이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이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의 핵심 문제들이 논의되고 결론적으로는 북-미 화해와 관계 개선, 국교 정상화, 수교 등이 의도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수교용인지 미국 선거용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합의가 과거의 양상(상호 속임수)과 일견 다른 모습은 합의문에 문화·교육·체육 등에 관한 인적교류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추가 식품지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무엇인가? 미국인들은 협정문구 자체도 중요하지만 “협정을 맺는 의도” 또한 중요하다고 한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세미나에서 미국이 “북-미 국교 정상화”라는 큰 결론을 유도하고 그 길을 가는 긴 여정에서 우라늄 농축을 지연시키거나 궁극적으로는 중지시킴이 목적이 아닌가 추측된다. 지연이 안 되면 국교 수립의 길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1994년에 있었던 제네바협정에서 보았던 미국의 꼼수, 즉 미국의 지연전술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이 실패해 왔으며 이제 더 심각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시킬 묘안이 없기 때문에 도달한 미국의 정책변화의 신호로도 분석된다.
북한은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길고도 먼 장정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특단의 조처를 내려야 할 시기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며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했으며, 핵국은 비핵국을 핵으로 위협해서도 안 되지만 미국은 여러차례 북한을 “원시시대”로 돌리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더구나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지만 북한만이 3개의 핵국에 노출되어 있다. 미국은 또한 1970년 초 베트남전 당시에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위반하며 핵지뢰(ADM)를 배치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으나 미국과 일본은 아직까지도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아 교차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1994년의 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았는데 그는 그 전에 북한이 몰락할 줄 알았다고 한다. 이 말은 그 협정을 지킬 의사가 없으면서도 조인했다는 실토와 같다.(1883년에 미국이 조선과의 우호친선조약을 지킬 의사가 없으면서도 조인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이슬람 샤리아법과 비교되는 서양법의 위선이라 할 수 있다. 한-일 강제합병을 허용한 태프트-가쓰라 밀약 참조)
이제 미국은 북한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침략하거나 개입할 수도 없고 핵무기로 위협할 수도 없다. 북한은 남한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방사능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는 핵발전소에 대한 미사일 공격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고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역사는 “군사적 해결을 거부한다”.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 노력이나 서울의 ‘핵(테러) 안보회의’도 “국격” 운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서방에 봉사하는 정책일 뿐이다. 남은 임기 동안 통미봉남이 된 이명박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의 시나리오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하는 한-미 군사훈련 등을 축소하거나 중단하고 늦게나마 한반도의 평화 로드맵에 적극 협력하고 동참함으로써 무임승차하는 일 외에는 대안이 없다. 미국과 북한이 그렇게 하게 할 것이며 아니면 다음 정권이 그렇게 할 것이다.
정대화 부산대 명예교수·미국 비살생세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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