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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7 19:35 수정 : 2012.09.18 14:01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2005년 오늘, 한반도 문제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아온 북한 핵의 해결 구도에 6개국이 합의했다. 합의 자체보다 이행 과정이 훨씬 더 험난할 것이라는 예고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환호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북핵 문제는 길을 잃었다. 북한이 정권과 체제 생존의 수단으로 핵에 집착하고 있고, 미·중의 상호 견제가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그 요인들이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 포기, 북-미 관계 정상화, 경제협력과 경수로 논의, 한반도 평화체제, 다자안보 대화에 합의하였다. 북한의 핵개발 동기로 간주되는 안보·정치·경제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한·미·중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합의는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수레가 아니라 계속 추진력을 받아 완성으로 가야 하는 장치였다. 그 추진력은 한국의 역할이었다. 2007년 2월13일 제1단계 비핵화 시공계획을 도출하고 80% 정도까지 진행됐지만, 한국의 정권교체와 때를 같이하여 추진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급기야 북한이 신고한 핵의 검증방식을 두고 6자회담은 2008년 말 좌초됐다.

핵능력의 불확실성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북한이 문제였지만, 북한이 취한 행동의 결과뿐 아니라 미래에 취할 행동의 검증방식까지 사전합의할 것을 요구한 미국 강경파들도 한몫했다. 미국 언론도 네오콘들이 ‘선불 요구’로 6자회담을 사보타주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일본에다 한국 정부까지 가담한 것이 안타까웠다. 4년간 6자회담이 미아로 떠도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추가 실험했고,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6자회담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회담이 진지하게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이 핵실험 명분을 찾지 못했다. 2006년과 2009년 실험 모두 회담이 좌초된 상태에서 감행됐다. 그래서 지금도 참가국들은 6자회담의 유용성과 9·19 공동성명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북핵 협상은 다른 군축협상과 달리 주고받는 카드의 성질들이 전혀 비대칭적이다. 북핵 폐기의 각 단계와 관계정상화 및 경제협력 그리고 평화체제 수립의 각 단계를 기계적으로 시간 배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강자의 입장에서 약속 이행 순서에 약간의 시차를 둘 수도 있다. 이 문제가 협상 전체를 붕괴시킬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의 충격과 우라늄농축시설 공개 이후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국내정치 사정으로 아직 협상이 바닥까지 가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북한의 “합리적 안보우려”를 한·미가 수용해주기를 기대한다.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해 보았는데도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한다면, 그때는 역으로 중국에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협상 이외의 수단을 동원할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국내, 중동 사정 등으로 북핵에 집중하기 어렵고, 중국 새 지도부도 내부 사정과 미국과의 긴장관계로 적극적 행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역설적으로 한국이 주인의식을 갖고 구심력을 발휘할 공간이 커질 수 있다. 북한도 진실로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어렵사리 이룬 2·29 합의를 미사일 발사로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함께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할 것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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