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0 19:20
수정 : 2012.10.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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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웅 열화당 대표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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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치 <한겨레>에, 문필가 고종석이 절필을 선언하는 글이 실렸다. 자신이 열심으로 쓴 글과 책이 이 사회를 바꾸는 데 별 영향을 주지 못함에 좌절한 듯한 글 표정이었다. 그의 심경이 분노에서인지 자성에선지 실망해선지는 알 수 없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어떤 증오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문득 2010년 2월 임종을 눈앞에 둔 법정 스님이 유언장을 발표했던 일이 떠올랐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이생에서 풀어놓았던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절판선언’이었다. 어쩌면 그가 이생에서 했던 모든 말까지 포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만물의 영장이란 존재는 한번 내뱉은 말과 글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므로, 법정은 평생 말하고 글로 썼던 일체를 저승으로 떠나는 짐보따리에 싸 스스로 둘러메고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리라.
그 장엄한 광경을 목격했던 나로서는, 지금 고종석의 절필선언이 실린 신문을 앞에 놓고 만감이 엇갈린다. 붓을 꺾겠다는 마음이 ‘말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는가, 대접받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인가 좌절인가, 아니면 어느 몹쓸 대상을 향한 증오인가.
그의 절필이 ‘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되새기게 하지만, 나는 이 기회에 특히 말을 관리하는 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권하는 바이다.
태초에 자연으로부터 쌀을 지어내기 시작할 무렵, 인간의 영혼은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한줄기 ‘말씀의 빛’을 찾아내었다. 삼천년도 훨씬 앞선 때에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이집트 문자며 수메르 문자, 갑골문자를 보자. 인간의 예지가 혼돈 가운데서 찾아낸 말씀의 빛에 의탁하여 인간 사회의 위대한 질서를 얻어내었고, 문명인간의 역사를 세웠으며, 그리하여 자연으로부터 지어낸 모든 것들을 문자로써 기록해 쌓아 왔다. 인간이 말과 쌀을 만들고, 그 말과 쌀이 다시금 사람을 만드는 순환의 원리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쌀과 말을 짓던 그 원초의 세계로 마음을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고종석은 말했다. “소수의 독자들이 내 글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내 책이 독자들에게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켜 많이 팔려나간 적은 없다.” 그리고, “설령 내 책이 꽤 팔려나가고 운 좋게 거기 권위가 곁들여졌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글이나 말이 이내 망각되는 경우도 많고, 당대에는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다른 곳이나 다른 때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안중근을 보라. 뤼순 감옥에 갇힌 사면초가의 처지에서 외롭게 폈던 법정투쟁의 기록은 백년 뒤 책으로 새로이 태어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넓고 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쌀을 짓고 글을 쓰는 자들이야말로 선한 농부여야 하고, 밥을 먹고 글을 읽는 자들이야말로 인류의 원초적 가치를 깨달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좋은 말이나 글은 한두 사람이 알아준다고 하여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는 순간 역사의 소유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말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요즈음, 그의 절필을 수긍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오히려 그 가치를 올바로 세워야 할 사람들은 고종석을 포함하여 말의 가치, 글의 힘을 굳게 믿는 우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기웅 열화당 대표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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