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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03 19:25 수정 : 2012.12.03 19:25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정근은 북한찬양 트위트들을 총 200여개 리트위트한 죄로 국가보안법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리트위트들은 같은 기간 아래와 같은 600개의 북한 조롱 트위트들 사이사이에 끼워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2010년 빼빼로데이 전날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를 필두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김정일 장군님께 부탁드리면 됩니다. 알아서 신묘하게 들어가집니다”, “제가 수령님 생각만 하면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만”, “아기 주사파는 옹위옹위하고 웁니다”, “조선의 심장인 혁명의 수뇌부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모든 것은 장군님께서 해주십니다. 홀아비에겐 아이도 갖게 해주시죠” 등이다.

이는 패러디 기법이다. 즉 원본에 의해 다져진 기대를 변형본으로 무너뜨리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기법이 가능하려면 청중은 원본을 보거나 원본을 연상해야만 한다. 박정근이 리트위트한 북한 찬양 트위트들이 바로 그 원본이다. 느닷없이 북한 조롱 트위트들만 썼다면 뜬금없어 보였을 것이고 웃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정근이 리트위트한 북한 찬양 트위트들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의 강고한 사상투쟁을 조롱하고 있으니 친북적 사고를 전파한다기보다는 반북적 사고를 전파한다. 그런데 검찰과 1심 법원은 북한 관련 트위트 800여개 중에서 조롱 트위트 600개는 손으로 가려버리고 나머지 200개만 보면서 ‘국가안보 위협 의도’를 읽어내고 있다. 마치 모나리자를 보면서 얼굴만 가리고 ‘목 없는 초상화’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초 트위터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한다는 것이 무리다. 트위터는 사적 공간이다. 팔로어들이 트위트 작성자의 글을 받아보는 것이 소통방식이다. 사전에 관계를 맺은 사람들 간의 소통이다. 법이 아무리 빛나는 논리를 갖추고 있어도 사적 소통에는 적용되지 않아왔다. 모욕죄, 명예훼손죄에 ‘공연성’ 요건이 있는 이유다. 국가보안법에는 그런 요건이 명시적으로 없어도 최소한의 공개성이나 공식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트위트들은 140자 이하로 짧고 시간이 흐르면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특성 때문에 트위터는 우리의 사적인 구술생활의 일부분이지 공적인 문자생활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술자리에서 나누던 대화들, 화장실 문에 하던 낙서들을 트위터가 대신하고 있는데 거기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규제적 모험이다.

또 표현에 대한 규제가 말한 사람만 처벌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화자가 무슨 말을 할지 청자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트위트 작성자와 팔로어는 그런 화자-청자의 관계가 아니다. 팔로어가 트위트 작성자의 사전통제 없이 트위트를 “끌어와서” 본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기전은 북한 찬양글들이 국민의 반공심을 약화시킬 수 있으니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트위트 작성자가 팔로어들에게 그런 책임을 져야 할 ‘적극적인 화자’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트위터에서의 소통은 반드시 트위트 작성자-팔로어 간에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공개 계정이 아닌 이상 제3자들도 자유롭게 트위트 작성자나 팔로어의 계정에 게시된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는 원작성자의 계정과 팔로어의 계정은 등가이다. 원작성자와 팔로어 모두를 처벌해야지 원작성자만 처벌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물론 그렇다고 둘 다 처벌한다면 또다른 문제, 즉 연좌제를 발생시킨다. 관계중심 서비스인 트위터를 정보 단위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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