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2 19:28
수정 : 2013.01.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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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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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원자력발전소가 가장 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우리나라다. 지난해 새로 원전 두 기를 가동, 총 23기를 가동하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원전대국뿐 아니라 원전을 가동 중인 31개 나라를 통틀어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 순위는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나라만큼 원전을 적극 확대하려는 나라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다섯 기를 건설 중이고 네 기를 건설 준비 중인데다 2030년까지 원전을 발전 설비 기준 41%, 발전량 기준으로는 59%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접지 않고 있다.
원전을 이렇게 확대해도 되는 걸까? 우린 정말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원전이 있기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싸게 공급받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 경제는 더 성장하고 우린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거꾸로 말한다. 원전이 있어 우린 늘 사고와 테러 위험에 불안할 수밖에 없고,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많은 걸 잃을 수 있으며, 결코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기에 결국엔 경제와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누군가는 원전이 녹색성장의 주춧돌로 친환경·저탄소 에너지원이라서 기후변화 대응에 아주 효과적이라고 말하지만, 또다른 이는 다른 어떤 에너지원에서도 발생하지 않는 방사능을 만들어내기에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으며 전생애주기를 따지면 탄소 배출도 꽤 되는데다 전력 사용 자체를 부추기기에 기후변화의 대응방안이 될 수 없다고. 원전을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전문가도 있고, 원전은 단계적으로 줄여갈 수 있고 또 그렇게 가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제대로 맞붙어 검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과학적 사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과학적 사실은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과 가치 모두 사회적 토론과 검증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이를 위해 공론장을 만들어야만 한다.
2012년은 각종 고장에다 고장 은폐 사건, 직원의 납품 관련 비리와 뇌물 수수, 마약 투약, 부품의 품질검증서와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등 원전 관련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해였다. 어느 쪽 입장에 서건 합의할 수 있는 최저선은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사고도 엄청난 재난이 될 수밖에 없기에 안전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당장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의 존폐를 어느 쪽으로 결정할 것인지가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 새 정부의 기준을 보여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친원전 학계나 업계 출신들로 구성된데다 여러 사건·사고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의 인적 구성을 쇄신하고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원전 문제는 안전 문제로만 치환될 수 없다. 사용후 핵연료나 폐로된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은 수만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윤리’와 ‘책임’이라는 가치가 그래서 중요하다. 안전과 윤리, 책임이란 가치로 원전 문제를 살펴보면 원자력은 결코 수용될 수 있는 에너지원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이 당장의 편리와 안락을 주지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에너지 이용 방식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원자력 안전 신화와 에너지 공급 확대를 통한 성장지상주의, 과학기술로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는 신화의 덫에 갇혀 있다. 이 덫을 걷어낼 수 있는 전 사회적 성찰과 의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럴 때 전기요금 현실화도 가능하고, 수요관리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재생가능 에너지를 아래로부터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올해엔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다. 이제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보자. 이것이야말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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