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9 19:12
수정 : 2013.01.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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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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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가을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을 사직하고 안철수 캠프에서 교육정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선거일 전 열흘간은 이수호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공동대변인 직을 맡았다. 한 시즌에 두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진보 교육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
대학 등록금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알다시피 안철수·문재인 후보는 ‘일률적 반값’, 박근혜 후보는 소득에 따라 차등화하는 ‘평균 반값’이었다. 그런데 나는 등록금 문제는 민생 문제이니만큼, 어려움이 큰 계층에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득 하위계층에겐 반값도 버거우니까. 그런데 캠프 내 토론 중에 소득에 따른 차등화를 주장했더니, 즉시 강력한 반론에 부닥쳤다. “그게 박근혜랑 뭐가 달라?”
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최종 형태가 ‘반값 등록금’이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나? 최종 목표는 무상 또는 그에 가까운 저렴한 수준이리라. 그렇다면 그를 향한 이행기 정책으로서 소득에 따른 차등화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소득 중간 이하 계층의 입장에서 득실을 따져 보라. 박근혜 후보의 등록금 정책이 더 유리하다. 부담이 없어지거나(소득 1·2분위) 혹은 현재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기(3·4분위) 때문이다. 여기에 박근혜 후보의 ‘셋째 자녀부터 등록금 전액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대학 등록금 정책은 판정패로 끝났다.(오해하지 마시라. 구호나 운동으로서의 ‘반값 등록금’은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치열한 이론적·정치적 검토 없이 선거공약으로 채택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혹자는 신입생 공동선발안이 빠지고 강의·학점·학위 개방 및 학생·교수 교류에 국한된 것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설령 공동선발을 해도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대학의 86%가 사립이고, 특히 서울·수도권에 국립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립대들을 통합하면 뭐가 달라질까? 서울대 자리는 연·고대가 차지할 테고, 상위권 학생들은 더 상위 사립대에 입학하기 위해, 중위권 학생들은 통합국립대에 입학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특히 서울·수도권 학생들에게는 경쟁경감 효과가 거의 없다. 원안에 사립대를 끌어들이는 방안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한계 상황의 사학에나 통할 방법이지, 학생 유치에 문제가 없는 서울·수도권 사립대한텐 통할 리 없다.
교권과 관련된 정책이 없었다는 점도 반성한다. 학생인권이 제아무리 시대적 당위라 할지라도, 학생의 수업방해·교사 모욕 행위에 대한 교사의 긴급행동권을 일정 기간 보장하는 이행기 전략이 필요했다. 중앙정부나 교육청이 구체적 방안을 지시할 필요도 없다. 학교공동체 내의 충분한 토론과 의사수렴을 통해 학교별로 교사의 긴급행동권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권장하고, 교육당국은 그 결정이 충분한 민주적 절차를 거쳤는지만 감독해도 된다. 그런데 퇴임 전 곽노현 교육감도, 이수호 후보도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제안 앞에서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박근혜 후보도 교권 문제는 공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자해지라고 하지 않던가. 대통령 후보든 교육감 후보든 야권이 이 문제에 천착했다면, 그 가치가 더욱 빛났을 것이다.
비록 교육정책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나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했다고 본다. 정책의 대중적 호소력에서 앞서지 못했다. 한마디로 실력이 달렸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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