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기고] ‘국정 교과서’로 되돌리자는 정부 / 주진오 |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1일 교과서 검정 과정에 장관이 개입해 감수기관을 지정할 수 있고,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라도 수정 요청을 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기면 합격을 취소하는 등의 처벌규정을 법제화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처음 제18대 국회 막판에 제출했다가 당시 여당 의원들마저 반대해 좌절되었고, 다시 지난해 8월 제19대 국회에 그대로 제출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아 유보된 것인데 이번에 수정해서 다시 제출한 것이다.
이 개정안은 교과서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며, 장관에게 교과서에 대한 전권을 주는 악법이라 할 수 있다. 교과부는 왜 이런 무리수를 범하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 왔다. 2008년 한국 근현대사 수정 지시라는 초법적 행정조처를 밀어붙였고, 현재도 금성출판사의 저자들과 행정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교과부는 이번 법률 개정을 통해 검정 교과서 수정 지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2010년 역사교과서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떼어내 정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검정을 하게 했다. 그리고 검정위원에 전문성이 부족한 뉴라이트 인사들을 포함시켰는데도, 합격한 교과서들에 대해 편향되었다고 지적하는 자가당착을 범했다. 그래서 또다시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합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교과서 대신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강요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개정안을 낸 것은 교과부가 국편이 위촉한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로 구성된 검정위원회마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총체적으로 믿을 수 없으니 자신들이 직접 검정 과정과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통제를 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이는 교과서 검정제도를 무력화시키고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교과부는 ‘학계에서의 객관적인 학설 상황이나 교육 상황에 비추어 학문적인 정확성이나 교육적인 타당성을 결여한 경우’와 ‘검인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발견한 경우’에 수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기존에 검정위원회가 갖고 있던 권한으로서 만약에 교과서를 그처럼 집필해 제출했다면 불합격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더욱이 검정위원회가 있는데 왜 장관이 감수기관을 지정한다는 말인가? 2008년 교과서 파동 당시에도 역사교육과 무관한 대한상공회의소나 국방부, 편향된 역사의식을 가진 교과서 포럼이 문제 삼은 내용을 수정 지시했던 것이 교과부였다.
만약 이번 법안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 우리 교과서는 교과부 장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는 불안정한 교과서가 되고 만다. 예컨대 교과부가 만약 5·16 군사정변을, 관변 단체의 감수 결과를 내세워 혁명이라고 수정하라는 지시를 하면 교과서 출판사들은 거부하기 어렵다. 만약에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검정 합격을 취소당하거나 검정 효력을 정지당할 수 있고 3천만원 이하의 과징금까지 물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집필자들이 거부해도 아마 출판사는 임의로라도 수정하려 들 것이 뻔하다. 이미 2008년 금성출판사에서 그렇게 한 선례가 있다. 즉 역사교육이 정권의 성향에 따라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큰 반대의견이 없으면 3월10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4~5월 중 정부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사학자, 역사교사들이 먼저 의견을 결집하여 ‘큰 반대의견’을 조직해 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언론·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반드시 이 악법 개정을 막아내야 한다. 이 문제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상식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특히 야당은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제18대 국회에서마저 막아냈던 이 악법을 대등한 분포를 가진 제19대에서 통과시켜 준다면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서 역사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을 우려해 왔다. 이번 악법 개정 시도는 새 정부에서 역사교과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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