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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1 19:22 수정 : 2013.02.11 21:41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모든 언론과 정부 당국,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20일 이상이 지났다.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 임박 전망과 관련해 지금까지 그 어떤 사실적 증거가 확인된 바 없으며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어떤 정교한 논리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핵실험 시설이라고 국방부가 지목한 풍계리 지하실험장의 모습만 해도 그렇다. 언론이 확인한 바로는 그게 2010년 9월 방영한 북한 기록영화의 일부로, 문제의 갱도가 나오는 배경은 실제 갱도가 아니라 주인공의 ‘미래 꿈’의 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이게 대북관계부처의 정보력 수준이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이 핵실험을 하리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소수파적 전망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단추만 누르면 된다는 식의 공상소설이 아니라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몇 가지 퍼즐풀이와 함께 현재 한반도가 처한 국제정치적 구조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북한은 ‘말’과 ‘담론’의 정치를 상당히 중시함으로써, 자신들 행위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왔다. 이는 1960~70년대 중-소 분쟁을 경험하면서 상대적 약소국인 북한의 입장을 두 강대국이 무시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터득한 것이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담론이 단적인 예다. 이전 두 차례 핵실험에서는 “자위권 행사를 위해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외무성의 간단한 성명을 통해 그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별 소리 소문 없이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성명과 결의,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으로 외무성은 핵실험과 관련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둘째, 북한이 핵실험을 지금 단행할 정치적 명분 내지 실익이 별로 크지 않다. 이전 두 차례 핵실험은 미국의 명백한 적대의도와 협상 불이행, 나아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계좌 동결 등 고강도 압박이 지속됐을 때, 그리고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약속한 2007년 2·13 합의와 같이 ‘말’이 ‘행동’ 단계로 전환되지 않았을 때 자신들의 핵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단행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세는 어떤가? 북한이 안보리 제재를 받은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닐뿐더러 이번 안보리 제재만 해도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별로 절박하지도 않은 조건에서 핵실험을 강행한다는 것은 북한이 그동안 보여 온 외교 패턴에 견주어 그다지 적실성이 없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정치적 긴장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가?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와 제2기 버락 오바마 정부에 보내는 모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이제 양국 정부가 새롭게 출발하는 초장에 직접 협상을 서둘러 최종합의에 도달하자는 의도를 내보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한국 정부와의 합의에 있어 중국이 더는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지렛대로 작용하지 못할 거라는 신호를 보인 것이다. 현재 한반도 질서의 현상유지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는 건 중국이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행동은 북-미 관계 개선에 실질적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 누적돼 온 불만을 우회 표출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북한 정권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대신 미국과 한국이 그에 상응한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대북 적대정책에서 관여정책으로 변화하고, 북-미 수교와 북한과의 경제협력안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3국간에 놓여 있는 현안을 일괄 타결할 적기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레그나 페리와 같이 이 분야 ‘선수’들의 의견을 긴밀히 청취하고 있는 미국은 외견상 그 강도를 더해가는 북한의 호전적 캠페인 이면의 강렬한 협상 의지를 읽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과연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는 이 국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현 사태 해결의 열쇠는 어쩌면 한국 정부가 쥐고 있다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향후 도래할 정세의 관전 포인트는, 그래서 단순히 북한 핵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정치력과 외교력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 곧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전체구조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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