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7 19:51
수정 : 2013.02.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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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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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을 지나 새봄이다. 엊그제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뉴스에서 ‘박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여러 가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를 모두 잃고 떠나온 청와대에 33년여 만에 돌아온 박 대통령의 감회는 더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단순한 취임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 속에는 고난과 역경을 뚫고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진지한 성찰과 의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그런데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소식이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정부가 전교조를 불법조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준법 조치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행위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우선 그 법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차례나 개정하라고 권고한 악법조항이다. 또 20여명의 해고자를 빌미로 6만명이 가입한 노조를 불법으로 모는 일은 상식적이지도 않다. 특히 지난 21일 검찰이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도 정치공작의 냄새가 짙다. 결국 사태는 정권교체기의 우연한 일이 아니라 박 정권의 치밀하게 기획된 첫 노동정책임이 분명하다.
전교조는 그냥 교직원들의 노동조합만은 아니다. 전교조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 대통령의 부친은 4·19 민주주의혁명의 결실인 합법 교원노조를 불법으로 만든 당사자였다. 그리고 그는 18년 후 와이에이치(YH)무역에서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죽음을 불사한 항거로 시작된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1987년 민주화가 수구세력의 3당 합당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을 때도 전교조는 여러 민주노조들과 함께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참교육’의 제단에서 희생된 1500명이 넘는 해고된 교사 조합원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10년 동안 지독한 정치적 박해와 생계의 곤궁을 견디지 않았다면, 이 땅에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1999년 이후 합법노조가 된 전교조에는 수백만 노동자들의 희생이 각인돼 있다. 전교조가 민주적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 노사정 합의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합법성 속에는 200만명 이상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난이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대통령 취임사에는 노동은 물론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송전탑 위에서 지새운 정리해고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도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전교조 교사들을 불법 이념세력으로 몰아 다시 탄압하려는 무언의 발언일지도 모른다.
1800만 노동자와 3000만 노동자가족을 제외하고서 국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전관예우를 받거나 위장전입할 능력도 없이 법을 지키고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지금 불법과 목숨을 담보로 차가운 거리에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외면하고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살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모순과 비극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만큼 그가 그 비극을 마감하고 극복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전교조와 노동에 대한 상식 밖의 탄압은 다시 한번 비극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녕 노동자들은 ‘국민행복시대’를 살 수 없는가? 박 대통령의 깊은 성찰을 요청한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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