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8 19:29
수정 : 2013.03.1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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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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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적·진보적 정치는 대선 이후 어떻게 스스로를 혁신할 것인가 하는 거대한 과제 앞에 서 있다.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정당들이 때로는 가혹하게 스스로를 혁신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의 지지를 재획득하여 박근혜 정부에 대적할 만한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치에 대립하는 진보적·개혁적 정치가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차기 집권을 목표하는 중도 자유주의 정치와 ‘소금정당’의 구실을 하는 (급진)진보정치가 그것이다. 중도 자유주의 정치라고 할 때 나는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세력을 포괄하며, 진보정치라고 할 때 진보정의당부터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기타 노동정치세력까지 다 포괄한다. 두 정치 내부에 물론 다양한 긴장과 대립이 존재한다. 예컨대 민주통합당이 ‘구’ 반독재 자유주의 정치를 상징한다면, 안철수는 새로운 시대적 요소를 담은 자유주의 정치를 상징한다. 그런데 내가 노원병에서 우려하는 것은, 각자가 대선 이후의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의 궤도를 질주한 이후에 상호 각축의 장에서 만나야 하는데, 곧바로 노원병이라는 공간에서 이해충돌 집단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까지 가세하여 이전투구를 연출하게 되어 있다.
일차적으로 이 사태의 발단은 안철수의 출마에 있다고 말해진다. 진보정당이 척박하게 일군 밭을, 그리고 그것도 삼성권력과 사법권력에 의해 의원직을 박탈당하게 된 마당에, ‘염치없게도’ 이를 ‘당선 가능한 지역’으로 파악하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출마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측근들이 제대로 된 조언을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안철수가 이야기하는 ‘새 정치’는 민주통합당과 ‘구’ 자유주의 정치와의 대립 속에서 빛을 발하는데, 그것을 진보정치에 대립해서 사용하게 될 경우 그의 새 정치라는 언어를 진보정치 쪽에서는 허상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게 되어 있다.
새 정치를 위해 ‘가시밭길’을 가겠다고 하면, 도대체 그 가시밭길은 어떤 가시밭길인지를 물으려 할 것이다. 이것은 안철수의 도덕적 정당성에 상처를 동반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정당 역시 안철수가 기존 중도정치에 대립해서 갖는 도덕성과 다른 결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안철수는 이기더라도 그동안 ‘길’이 다르기 때문에 침묵했던 다수의 논리적인 반대자들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진보정치도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김지선 후보의 충분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회찬의 부인’이라고 해서 일각의 비판이 있는 마당에, 안철수가 ‘독점’해버린 새 정치와 대립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은 ‘좌파 안철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그를 뒷받침하던 대중운동마저 약화됨과 동시에,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면서 ‘후진적’ 정치세력의 이미지까지 가지게 됨으로써 ‘좌파 안철수’이기를 멈추었다. 이로써 진보적 대중운동과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진보정치의 ‘긍정적 위협’ 아래에서 중도 자유주의 정치가 보수정치를 압도해가는 1987년 이후의 ‘선순환 구조’도 해체되었다.
나는 이상적으로는 두 정치가 각각 상이한 궤도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혁신의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중도 자유주의 정치는 대선에서의 박근혜의 ‘좌클릭’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사회적 자유주의 정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며 새로운 생활정치적 요구를 받아안고 내부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중도 자유주의 정치의 혁신 방향은 이미 문재인-안철수가 발표한 ‘새 정치 선언’ 속에 존재한다. 민주통합당, 안철수 세력, 장외의 시민사회세력을 아우르면서 현재의 민주통합당을 해체적으로 재편하여 새로운 ‘국민’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정치는 스스로가 게토화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이명박 정부 하의 ‘기회의 시기’가 왜 ‘재앙의 시기’가 되었는가를 성찰하면서, 새로운 노동세력을 충원해내고 안철수가 독점해버린 새 정치를 급진적으로 전유해내며 진보정치를 대중이 신뢰하는 통합적 새 정치로 재구성해내야 할 것이다.
이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노원병에서 이 두 가지 흐름이 충돌하게 되었지만, 상호파괴적으로 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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