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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7 18:46 수정 : 2014.08.27 18:46

신용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연구원장

하늘을 열 듯 확 트인 바닷가, 끝없이 달려드는 겹겹의 하얀 포말, 반짝반짝 뜨거운 모래밭과 살찐 모래언덕, 짙푸른 송림 뒤로 자리잡은 향토적인 포구 풍경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했던 태안해안국립공원. 그곳에 검은 재앙을 가져왔던 2007년 기름유출사고 이후 매년 진행하고 있는 생태계 회복 모니터링 결과, 대부분의 조사항목은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상당 기간 침체되었던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남쪽 끝 영목항에서 북쪽 끝 학암포까지 개설한 100㎞ 해변길은 새로운 명소가 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길이 없을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은 마치 7년 전 인간의 잘못을 용서하듯, 120만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답하듯 대자연의 회복력을 크고 너그럽게, 즉 태안(泰安)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태안스럽지 않은 곳이 있다. 우리나라 사구(砂丘)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생태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공원구역으로 편입된 신두리 모래언덕의 원형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남쪽 절반이 거대한 옹벽과 리조트 시설로 인공경관으로 변모한 이후, 최근에는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북쪽 절반마저 과도한 이용으로 본래의 모습이 사라질 처지에 있다. 사구는 독립된 자연이 아니다. 바닷속 모래와 바다 위 바람, 날아온 모래 입자를 떨어뜨려 긴 뿌리로 결속시키는 사구식물들, 그리고 배후의 모래숲과 습지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생태계의 일부이다. 따라서 가운데에 위치한 사구를 보호하려면 바다에서의 해사 채취와 육지에서의 지표면 교란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국립공원을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공원구역 밖에서도 자연친화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공원구역 밖의 사구에서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경관을 조성하고자 식생을 제거하는 행위는 자생종을 위협하는 외래종에 국한하여야 하고, 방문객을 위한 출입 시설은 사구 중심이 아닌 주변의 일부 지역에만 설치하여 답압에 의한 침식 현상과 외래종 유입 여건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국립공원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2년 전 식생이 제거된 사구의 정상부가 1m 이상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다른 해변에서 시행한 사구 복원 사업에서 모래 높이가 1m 복원되는 데 약 10년이 소요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사구는 이색적인 경관 이상의 것이다. 혹독한 바다환경으로부터 인간 생활권을 보호하는 완충지역이고, 바닷물과 섞이지 않는 민물을 저장하여 식수와 농업에 이용하게 하며, 모래환경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희귀생물들의 보금자리이다. 종다리, 흰물떼새, 표범장지뱀, 금개구리, 해당화, 통보리사초, 올해 처음 발견되어 아직 한국의 생물호적에 올리지 못한 (가칭)백사장눈물버섯, 모래선녀버섯 등 이렇게 정겨운 이름들을 가진 생물들이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마지막 터전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선조들에게 고마워하고, 그들의 후손에게도 자연 그대로의 땅으로 넘겨주어야 할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교훈의 땅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사구정상을 무분별하게 짓밟는 대중관광이 아니라 사구의 참다운 가치와 역사를 공부하는 생태관광이 시도되어야 한다. 현 세대가 애지중지할 금수강산이 얼마 남지 않은 시대에 신두리 모래언덕에서 자연과 사람이 지혜롭게 공존하는 혜안을 가졌으면 한다.

신용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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