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육을 7개의 ‘공통과목’(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으로 축소하는 것이 문·이과 통합일 수는 없다. 개정안에 제시된 일반선택과 진로심화선택은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문·이과의 ‘통합’은 핑계일 뿐이고, 국민들이 수학·과학을 적대시한다는 교육부의 황당한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실질적인 ‘이과 말살형’ 개정안이다. 민주화·다원화·선진화된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줄 것을 요구해왔던 과학계로서는 절망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당혹스럽다. 학교의 자율성을 핑계로 최소이수단위를 최소화해 버렸다. 최소이수단위 축소의 폐해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자사고가 일반고보다 국영수에 12단위 이상을 더 배정한다. 문과 학생들은 99.9단위(55.5%)의 국영수와 9.4단위의 과학을 이수하고, 이과 학생들은 105.2단위(58.4%)의 국영수와 10.2단위의 사회를 배운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자율성을 이용해서 수능에 유리한 국영수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과목도 황당하다. 현재 83개의 교과목이 102개로 늘어난다. 7차에 있었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이 되살아나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이 신설되고, 문법과 벡터는 사라진다.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진로심화선택에는 여행지리, 합창·합주까지 들어간다. 교사·시설이 부족한 학교가 이렇게 많은 교과목을 제공할 수는 없다. 결국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은 교육과정의 교과구성에만 존재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학생들은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 겉으로는 융합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과목의 편식과 학력 저하를 강요하는 셈이다. 더욱이 교과목이 새로 생기면 교과서와 참고서도 만들어야 하고, 교사도 늘어나게 된다. 무차별적인 과목 쪼개기가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닌 셈이다. 교육 내용 감축은 사교육 조장으로 이어진다. 무작정 교육 내용을 줄인다고 학생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쉬운 내용으로 수능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은 사교육 시장이 제공하는 강도 높은 문제풀이 훈련을 찾을 수밖에 없다. 창의교육을 핑계로 학습 내용을 30%나 감축했던 7차 교육과정이 사교육 조장의 기폭제가 되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과거에도 새로 도입되는 교과목은 국정으로 발행했다는 교육부의 해명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6차 교육과정에서 새로 도입된 ‘공통과학’ 교과서도 검정이었고, 2009년에 새로 도입된 ‘융합형 과학’은 서울시교육청의 인정으로 발간했다. 교과서의 국정화는 시계를 40년이나 뒤로 돌리고, 교과서 발간 방식을 2단계나 퇴화시키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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