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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9 18:32 수정 : 2014.09.29 18:32

김상민 뉴욕 거주 무대디자이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속도를 더해갈수록, 사회 곳곳에서 친환경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연을 짓밟는 개발의 속도가 저절로 늦춰지기를 기다리는 건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사회 각 분야에서 혹은 자그마한 공동체에서부터 자연과 융화하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의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무대 디자인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뉴욕을 중심으로 여러 무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디자인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맹렬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맞서 ‘우린 이렇게 살 거야’라는 공동체적 삶의 각오 같은 것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 공연예술계에는 ‘브로드웨이 그린 얼라이언스’라는 단체가 있다. 단체 가입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공연 중에서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한 사례를 공유한다.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토니상 수상자 도녜일 월리다.

나는 그를 도와 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친환경적으로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맨 먼저 이렇게 말한다. 플라스틱 통 속에 담긴 물을 사 먹지 말고 개인용 유리병이나 스테인리스 병을 사용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이다. 그는 모형 모델을 만들 때 흔히 쓰는 우드록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드록 한 장이 분해되는 데는 50~100년이 걸린다. 분해된 우드록은 흙 속으로 스며들고 식물은 흙 속의 우드록 성분을 흡수하고 인간은 그 식물을 뜯어 먹은 동물을 먹게 되어, 결국 우드록 성분은 인간의 몸속까지 침투하게 된다.

작업을 도우러 스튜디오에 온 사람들에게 그가 주는 첫 숙제는 재활용 상자는 가득 차도 되지만 일반 쓰레기는 쓰레기통 상자 바닥에서 1인치 이상 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어떻게 하면 무대를 좀더 친환경적이고 저렴하게 만드느냐를 고민하다가, 지프차를 렌트하여 브루클린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공연에 필요한 소품과 자재들을 재활용 물건 중에서 대부분 공짜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는 무대에 쓸 비용을 최대한 적은 액수로 제한하는데 이게 창의력까지 제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창의력을 끌어내는 추동체의 역할을 한다. 예컨대 제작비용을 0원으로 잡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제작하기로 하자. 피로 물든 어두운 느낌의 세트를 디자인하려 할 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떠오르는 것은 판지, 철사, 검은색 종이가방, 목각 그리고 천 종류들이다. 이런 것은 가까운 재활용센터나 분리수거장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여기에 제작비 10만원을 추가해보자.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 제작비 0원일 때 고안해낸 자재들부터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훨씬 예술적이면서도, 표현하고자 하는 어두운 느낌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무대 디자인의 환경 문제는 연극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나와 가까운 작가, 조지나 에스코바는 친환경 무대 디자인을 의식해 희곡을 쓴다. 잘 분해되지 않는 나왕 목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도 많다.

지금부터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히 멈추더라도 이미 방출된 양만으로도 몇백년 뒤에는 오존파괴와 온난화 현상이 극에 달해, 지구상의 대부분 생명체가 멸종위기에 처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달 남짓 공연할 무대를 위해 재활용이 불가능한 자재들로 무대를 가득 채운 뒤, 공연이 끝나면 또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 동산을 남기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갈 것인가. 친환경적 무대 디자인, 꼭 실현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과연 무대 디자인만의 과제일까.

김상민 뉴욕 거주 무대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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