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30 21:30
수정 : 2014.10.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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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사월혁명회 공동의장·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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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간 지도 두 달이 되었지만 지금도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보듬어주던 숨결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신이 먼저가 아닌 인간 중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교황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의 통일 문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 형제들도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교황 말씀에 머리를 세차게 맞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교황의 말씀은 ‘당신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까 빨리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격려인 동시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지금껏 통일을 하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죽비로도 들렸다.
우리가 원치 않았던 대립인데도 냉전시대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이데올로기를 놓고 우리는 동족끼리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으며 지금도 ‘골수우익이니 종북좌파니’ 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란 생존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사상인데 어느 것인들 완전무결할 수 있겠는가. 사상이 이데올로기화하면 그것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수단이 되고 허위의식으로 변한다. 지금이라도 백해무익한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빨리 이룰 수 있을까?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난 70년간 쌓아온 적대감과 불신감을 씻어내는 일이다. 동족상잔의 상처가 깊은 마당에 그렇게 하려면 내 부모 형제를 죽인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래도 해야 한다. 분단이 자아낸 수많은 고통과 억울함은 우리 민족끼리 껴안고 용서해야 멈출 수 있지, 어떤 동맹국도 멈추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형제간이라도 7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7번이 아니라 77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를 잘 음미해야 한다.
다음으로 통일에 장애가 되는 장치와 제도를 거두어내는 일이다.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참전했던 그 가치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러나 지금 우리는 중국과도 국교를 맺고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또 경제발전을 토대로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있다. 미군 주둔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도 미군의 계속 주둔은 우리가 주장하는 자주평화통일에 장애가 되고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 남북 간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북한 핵무기와 한-미 군사훈련 아닌가!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미군 철수다. 미군이 철수하고 이를 조건으로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작권 환수와 사드 배치 문제도 자동으로 해결된다.
이어서 중요한 것은 남북 간에 기존에 제시된 좋은 통일방안과 정책의 적극적 실천이다. 6·15, 10·4 공동선언에서 얼마나 좋은 정책들이 나왔는가! 나는 오래전에 나왔던 ‘남북연합’이나 ‘느슨한 연방제’보다 더 좋은 통일방안을 알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하면서 5·24 조치조차 왜 해제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도 통일준비위원회라는 통일기구를 만들었으니 각계각층을 망라한 거국적 형태로 강화하고 구체적 통일방안을 시급히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재야단체들도 하나로 뭉쳐서 통일된 의견을 통일기구에 건의하고 압력도 가해야 한다.
내년이면 분단 70년이다. 분단이 길어질수록 언어의 동질성은 물론 통일에 대한 열망도 약화된다. 남한이 더 성장을 이루고 더 잘사는 것도 좋다. 그러나 형제끼리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분단처럼 반인간적, 반민족적인 것은 없다. 내가 먼저 양보하자. 통일을 위해 양보하자.
안현수 사월혁명회 공동의장·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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