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31 18:51
수정 : 2014.12.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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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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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웨덴의 대표적인 서커스예술단체 ‘서커스 시르쾨르’를 초청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커스를 이용한 예술교육 워크숍을 열었다. 시르쾨르 쪽 예술가 세명이 우리 예술교육 관계자 마흔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줄 위에서 균형 잡기나 깃털을 손바닥에 세워놓고 움직이기와 같은 초보적인 몸동작 훈련도 있었지만 공놀이를 통해 덧셈 뺄셈의 수학공부를 하는가 하면 실패와 실수들을 즐거워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 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해외에서 요즘의 서커스는 우리 고정관념 바깥으로 무한 확장 중이다. 1970년대 이후 유럽이나 미주의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 옛날의 천막극장서커스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곰이나 원숭이, 아이와 노인과 난장이가 나오는, 동물학대와 인권유린의 혐의를 풍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태양의 서커스’는 또 어떤가. 1981년 캐나다의 20대 거리예술가들이 퀘벡주의 사업공모에 당선돼 10만달러를 받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연매출 1조원에 4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 되었고 2014년 한해 10개의 작품이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했고 1500만명이 관람했다. 무엇보다 ‘태양의 서커스’는 크고 작은 서커스기업들을 새끼치면서 서커스 산업을 캐나다의 대표 산업으로 만들어놓았다. 최근 몬트리올을 방문했는데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생미셸이라는 변두리 빈민 지대에 ‘태양의 서커스’ 본사뿐 아니라 서커스예술학교, 전문 공연장 ‘토후’까지 하나의 서커스타운이 조성돼 있었다. ‘태양의 서커스’ 간부들은 매출 1조원의 1%를 사회공헌에 쓴다는 것과 이 지역 다섯개 초등학교에서 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서커스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양가감정이 있다. 서커스는 문화의 슬럼이자 게토, 딴따라 중에서도 가장 계급이 낮은 딴따라다. 동물이나 어린이를 학대하고 이상한 약이나 파는 싸구려 흥행 산업이다. ‘태양의 서커스? 그건 다르지. 예술이니까.’ 이런 식이다. 우리 문화재단이 용도 폐기된 구의동 취수장을 거리예술센터로 리모델링해 올봄에 문을 여는데, 거리예술에서 서커스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여기서 서커스를 너무 내세우면 당장 사방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온다.
한국에서 서커스는 지금 과거의 전통이 끊기고 새로운 시대가 도착하기 전의 공백 상태다. 동춘서커스는 서해안 제부도에 전용 천막극장이 있고 스물 전후의 젊은 남녀 단원들이 고난도의 기예를 보여주며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고 있지만 공연 내용은 ‘북경 서커스’이고 실제로 기술과 인력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다.
하지만 전통의 흔적만 남은 이 공터에 새로운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싹들이 보인다.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2~3년 전만 해도 공중묘기는 해외 단체들 몫이었는데 요새 국내 단체들 역할이 커지면서 한해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또한 서커스는 그동안 공적 지원 영역의 바깥에 있었는데 구의취수장 거리예술창작센터를 비롯해 서커스예술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지금은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에서 배워오는 단계이지만 한국은 진도가 빠른 사회이고 영화나 대중음악이 그랬듯 서커스예술 역시 선생들을 금방 따라잡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레그스 온 더 월’(legs on the wall)이라는 서커스예술 극단이 3년 전부터 사물놀이에 흥미를 느껴 우리 예술가들과 함께 ‘사물놀이 서커스’ 작업을 진행해왔고 올해 구의취수장 개관 이벤트나 거리축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전통문화에서 에너지를 길어 올려 새로운 한국형 컨템퍼러리 서커스로 가는 길은 아마 우리 상상력의 갈래만큼 다양할 것이다.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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