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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1 19:05 수정 : 2015.01.21 19:05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백화점 모녀 사건’이 터지자, ‘갑질’을 한 해당 모녀를 향해 모두들 격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때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트위터에 “우리 사회 갑질은 새로울 것도 없다만 백화점 알바생 3명이나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면서,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자 다수의 트위터와 언론들에서 “현실이 직장인들도 무릎 꿇는 상황인데 알바생에게 무릎 꿇지 말고 저항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저항은 알바생이 아닌 사회의 몫이다. 해당 알바생이 즉자적 저항은 하지 않았지만, 이후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고발한 것 자체도 의미가 크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저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사건을 알린 것 자체가 저항이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또 “갑질은 현재 우리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다”라는 지적도 있었다.

다 맞는 말이다. 해당 알바생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과연 현재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바뀌기 전까지는 알바생들이 ‘강요된 무릎꿇기’를 감수하면서 심한 모욕감과 치욕을 당하고 난 후에 비로소 고발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다.

필자는 ‘백화점 모녀 사건’은 본질적으로 ‘저항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권리(기본적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법적) 권리는 행사하면 된다. 저항을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헌법적 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제10조)하고 더하여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관련하여 특별히 인간의 존엄성을 법률로 보장하도록 규정(제32조 제3항)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화점은 알바생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알바생의 무릎꿇기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백화점 모녀도 알바생의 헌법상 권리에 대해 침해해서는 안 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스비에스) ‘백화점 모녀와 땅콩회항’ 인터뷰를 보면, 해당 알바생은 “너무 두려워서. 알바를 그만두면 등록금 마련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무릎을 꿇었고, 백화점 모녀는 “모욕감을 준 알바생을 때리지는 못하니까 무릎 꿇고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인터뷰에 응한 대한항공 승무원은 고객대응 매뉴얼에 따라 “잘못했거나 사과할 때 무릎 꿇고 한다”며 “그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알바생도, 백화점도, 백화점 모녀도, 항공사와 승무원도 자신들의 헌법과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여년 전에 ‘강요된 사과’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위반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강요된 무릎꿇기’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침해다. 따라서 백화점 모녀의 행위는 단순히 수인가능한 범위의 갑질이 아니라 헌법위반임과 동시에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손해배상)이 있는 범죄행위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서구 사회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을 방치한 백화점과 더불어 모녀 고객은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징벌적 금전손해배상 책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강요된 무릎꿇기’는 히틀러 나치시대의 세대들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필자가 묻자 독일의 젊은 세대(대학생들)도 한결같이 그것을 거부해야 할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더이상 ‘강요된 무릎꿇기’와 같은 반헌법적 인권범죄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고용주와 소비자들이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인권 착취와 희생을 담보로 한 ‘서비스 과잉의 문제’를 한번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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