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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6 18:44 수정 : 2015.01.26 18:44

연말정산 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동안 직장인들에게 연말정산은 ‘13월의 월급’이라 불렸다. 그런데 올해는 환급은커녕 오히려 추가로 돈을 내야 하니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나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 공방과 함께 자기 쪽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부산을 떨고 있다.

어찌 보면 ‘13월의 세금폭탄’은 예견된 것이었다. 징조는 박근혜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 발표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013년 8월8일 기획재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연간 총급여가 3450만원 이상인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부족액을 ‘월급쟁이 증세’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발표 나흘 만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질책이 떨어지자마자 정부는 단 하루 만에 총급여 5500만원 이하의 세금은 늘지 않는다며 졸속 수정안을 발표했다.

직장인들이 분노한 것은 단지 자기 세금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주장과는 달리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금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5500만원 초과자도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봉급생활자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정부 스스로도 이번 개편으로 봉급생활자들의 세수가 1조원가량이 증가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본질은 외면한 채 공제항목 신설, 공제액 인상 등 연일 미봉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득세 비중 제고, 비과세 감면 축소, 복지재원 확보 등 현 정부가 부닥친 당면 과제와 상충된다. 각종 공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데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성난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개정하게 되면 또 다른 화를 부르게 된다. 조세정책은 긴 안목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지 여론에 밀려 선심성 땜질 위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큰 문제가 있다. 정부·여당은 소득세 산정이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통과된 법률에 따른 것인데도 소급해서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한다. 세금의 생명은 신뢰다. 소급적용하겠다는 발상은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납세의식, 법적 안정성, 형평성 등을 감안할 때 하책 중의 하책이다. 이런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세법 개정 때마다 비슷한 요구가 반복될 수 있다. 소급적용보다는 증세를 하지 않는 것처럼 꼼수를 부리고 국민들을 기만한 데 대해 정부가 진솔하게 사과하고 국민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바른 길이다. 국민들께도 당부드리고 싶다. 내 세금만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 전체 차원에서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이용섭 중국사회과학원 초빙연구원·전 국세청장
출범 2년도 안 된 박근혜 정부에서 조세정책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잘못된 경제관 때문이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낙수경제론은 질 좋은 성장을 저해하고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책임이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이제 소모적인 증세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8년부터 8년째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3년 연속 세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19%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5%와 비교하더라도 너무 낮다. 새로운 세금 도입이나 급격한 세율 인상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세 부담 여력이 있는 대기업, 고소득자, 고액 자산가에 대한 조세부담을 적정화해서 복지재원도 확보하고 재정건전성도 회복하는 길로 가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세수부족액을 근로소득세,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와 같은 ‘서민증세’를 통해 조달하려 한다면 제2, 제3의 세금대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용섭 중국사회과학원 초빙연구원·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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