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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2 18:34 수정 : 2015.02.02 20:50

일본 오사카시 중앙에는 9만 제곱미터의 공원이 있다. 나니와노미야아토(難波宮蹟) 공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원래 오사카시의 혼마치(本町)와 한 블록 떨어진 번화한 상업중심지였다. 이 토지를 국가가 매입하여 건물을 철거하고 사적공원을 만들었다. 바로 이 지역에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의 궁궐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7세기에 지어진 이 궁궐은 대화재를 만나 폐허가 됐다. 사람들은 궁궐터 위에 집을 짓고 1천년 넘게 살아왔다. 그러다 1954년 한 고고학자의 노력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40여년이 걸린 도심부 발굴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랐지만, 조사 연구 과정에서 이곳이 거대한 궁궐터임을 알게 됐다. 당시 일본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천문학적 금액을 기꺼이 부담했다. 이리하여 일본 고대사의 황금기였던 아스카 시대 난파궁(나니와노미야)의 실체가 드러났다.

서울에는 풍납토성이 있다. 풍납토성은 일본의 나니와노미야보다 700년 앞서 건설된 백제의 도읍이다. 우리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이다. 백제가 처음 도읍한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 학계에선 풍납토성 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아우르는 지역인 것으로 합의해 가고 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건국 이후 475년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거의 500년간 이곳에서 찬란한 철기문화를 이룩했다. 온조왕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지 2천년이 지나서야 백제의 고대사가 그 웅장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풍납토성이 문화재로 지정된 때는 1963년이지만 당시엔 성벽 일대에 대한 매입만 이뤄졌다. 그 때문에 성 내부 지역에 대한 보존책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 2001년에야 이미 주택이 들어선 성곽 내부 지역을 매입하여 문화재로 가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국가중앙기관인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7:3의 비율로 자금을 투입하여 토지를 매입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세월에 매입이 완료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재 속도라면 앞으로 40년간 약 2조원(2014년 기준)을 투입해야 보상을 끝내고 본격 발굴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최근 서울시는 하루라도 빨리 주민 불편을 더는 동시에 국가 주요 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그 매입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보상비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지방채라도 발행하여 단기간에 주민 보상을 마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오히려 매입보상 권역을 대폭 축소하고 건축제한을 풀겠다고 고시했다. 백제 고도의 문화유적 훼손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난파궁 터를 지켜냈지만 우리는 풍납토성의 유적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 서울 풍납동의 주택가격은 일본 정부가 공원을 일구기 시작했던 30여년 전 오사카 혼마치의 상가 가격과 비교하더라도 말할 수 없이 헐하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돈이 없으니 이 지역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한-일 관계는 역사문제로 얽혀 있다. 우리 고대사를 왜곡·말살하려는 기도에 맞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고대사의 보물창고를 지켜야 한다. 풍납토성은 북녘의 평양성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 가운데 하나다. 이곳이 보존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논쟁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방채가 아니라 국채를 발행해도 좋을 것이다. 현 정부는 문화 창달을 부르짖으며 등장했다.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실천은 문화재 보존에서 시작된다. 현 정부의 문화 창달 의지는 풍납동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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