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05 18:36
수정 : 2015.02.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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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훈 시인·평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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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최근의 불교 주변 문제를 두고 함께 종종 고민을 나누었는데 이번에 언론에 꼭 알리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조계종 총림 부산 범어사의 대규모 산림훼손과 그 사후처리 문제 때문이었다.
스님 말로는 범어사가 금정산 그린벨트 지역에 도로를 내면서 울창한 산림이 파괴되었고, 행정관청의 고발도 있었으나 불법개발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뒤늦게 원상복구를 약속했다지만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작은 암자의 주지 한명 선에서 책임을 묻고 사태를 무마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서슬 퍼렇기만 한 관료 권력을 거스를 수 있는 그 힘의 배경이 궁금하다. 문제가 밝혀져도 자숙이나 가벼운 징계에 그치고 있으니 그 비호세력도 궁금하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추문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권력과 궤를 같이하는 절이 싫어 떠나는 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종로의 조계사 성역화 작업을 하면서 멀쩡한 대웅전 부처님이 대형 불상으로 교체된 적이 있었다. 도심에 위치해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이유에서라고 들었다. 소박하고 정겨웠던 부처님을 몰아낸 법당은 몸집만 잔뜩 키운 기형의 한국 불교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찰을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외국인이 우리 불교를 우러러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보다 경제 형편이 못한 티베트나 베트남 불교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한국 불교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 변방의 불교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 나라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티베트와 베트남 불교 모두 신음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밀교와 선불교 특유의 오묘함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민족 자존심을 굳건히 지켜온 대승불교 정신에 서양인들이 크게 감동하였던 것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불교는 긴 설명이 필요없겠다. 틱낫한으로 대표되는 베트남 선불교도 반독재 평화운동의 역사로 점철돼왔다. 그는 베트남 내전이 극심했던 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반전평화 운동을 펼쳐왔다. 이들 두 나라 불교도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무렵에 고대 인도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과 침탈이 일상이었다. 붓다가 삶을 고(苦)로 파악한 실상은 철학보다는 실존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속가 왕국이 이웃 강대국의 침략에 의해 도륙되고 멸망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러 번 머리를 조아리고 애원했지만 눈앞에서 친인척들은 잔인하게 살육당하고 만다. 중생 구제를 위한 젊은 구도자의 서원은 그래서 눈물겨운 것이다.
4·16 세월호 대참사의 기억이 벌써 희미해져 가고 있다. 혹독한 추위 속 겨우내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도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평화의 종교’라는 수식어에만 안주하지 말고 조계종은 이제 선불교라는 종지에 걸맞게 성성한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때론 자본과 권력에 단호히 맞서 중생들의 피눈물을 닦고 어루만져 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 불교사의 걸출한 선승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는 저서 <선가귀감>에서 말세의 불교 현상을 크게 걱정했다. 농부들의 피땀 어린 공양미나 축내며 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불교를 한탄하며 스스로를 경책했던 것이다. 500여년 전 선사의 말이 오늘 이 땅의 불교 현실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훈 시인·평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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