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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7 19:36 수정 : 2015.02.27 21:03

[기고] 김익중 원자력안전위 위원

26일 오전 10시에 회의를 시작한 제35회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모든 시민이 잠든 27일 새벽 1시 월성원전 1호기(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모든 과정에 참여한 위원으로서 이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수명연장이 결정된 게 문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성 1호기는 캐나다의 캔두형 원전이다. 우리 법 체계에서도 국내외의 최신기술기준을 활용해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캐나다의 최신기술기준을 적용·활용해 안전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도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는 이것이 생략됐다. 월성 1호기보다 늦게 설계·건설된 월성 2·3·4호기에는 캐나다의 최신기술기준인 ‘R-7’이 적용됐다. 월성 1호기는 이 R-7 기준이 만들어진 1991년 이전에 건설된 탓에 이 기술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R-7에 따라 요구되는 설비는 총누설감시설비, 사용후핵연료방출조 수문, 원자로건물 관통부 격리밸브 36개 등 여럿이다. 이들 설비는 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능 물질의 원자로 건물 밖 누출을 줄여주는 것이다. 당연히 월성 1호기는 이런 설비를 추가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들 설비를 추가하지 않았다. 결국 규제기관인 원안위는 이들 설비 없이도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판단한 셈이다.

안전성을 높일 설비가 없으면 안전하지 않다. 이건 전문지식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세계 각국은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려 설비 보강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핵사고가 얼마나 심대한 피해를 입히는지 두눈으로 직접 본 탓이다. 물론 안전기준을 강화하려면 그만큼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는 사고 위험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 등은 핵사고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려고 ‘원전 0’의 시한을 정해, 탈원전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선 이런 고민과 노력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안전설비에 투자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 데 급급했다. 2015년에 새로 나온 기술기준도 아닌, 24년 전 기술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원전의 수명연장 결정은 규제기관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원안위의 수명연장 가결은 의사결정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제2기 원안위는 그동안 나름대로 자료 검토나 질문 등 정상적인 심의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해왔다. 물론 옳은 결정만 해온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료 검토나 질의응답의 과정은 충분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선 그렇지 않았다. 새로 받은 자료를 읽을 시간도 없이, 질의도 충분히 하기 힘든 분위기에서 서둘러 표결이 강행됐다. 회의 시작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어 표결이 진행된 사실만 봐도 얼마나 졸속으로 표결이 강행됐는지 알 수 있다. 위원장한테 이렇게 표결을 강행하는 이유를 거듭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지난 1년6개월간 여러 차례 소수의견을 남기며 표결에서 패배했지만 표결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료 검토와 심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고, 졸속으로 표결이 강행됐기 때문에 표결을 거부했다. 이렇게 평소와 달리 표결이 강행된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만 원안위의 독립성을 강화할 절실한 필요를 뼈저리게 되새긴다.

김익중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동국대 의대 교수
사실 여부를 아직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리원전 1호기 재수명연장을 안 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려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이 강행됐다. 이 두 사건의 연결고리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혹시나 우리 사회가 원자력의 안전을 정치적 협상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의 사안으로 판단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심각한 오만이다. 핵사고는 국가의 존망을 가를 중대 사안이다. 아무리 낮춰잡아도 국민 안전을 위해 국방에 준하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원자력 규제 없이 국민 안전은 없다. 원안위의 독립 없이 제대로 된 원자력 규제는 불가능하다.

김익중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동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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