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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6 18:54 수정 : 2015.07.06 22:02

엘리엇 펀드의 기습공격으로 난관에 부딪히는 것 같아 보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작업이 지난 7월1일 법원에서 엘리엇 쪽이 제기한 합병 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이 기각됨에 따라 탄력을 받게 되었다. 애초 엘리엇 펀드의 주장이 시장경제 원칙이나 국내 법규정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번 판결은 당연한 귀결로 생각된다.

반면에 최근 발표된 미국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자문 결과는 예상대로 아메리칸 스탠더드와 미국 펀드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본다. 합병의 성사 여부는 결국 17일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자산규모가 30조원대에 불과한 엘리엇 펀드가 세계적 유명세를 치른 사례는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 건을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가격이 폭락한 아르헨티나 국채 4억달러어치를 4800만달러의 헐값에 매집한 뒤 10년에 걸친 끈질긴 소송을 통해 이자 포함 13억3천만달러라는 거액을 챙겼다. 이로 인해 엘리엇 펀드가 2014년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위기설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법률적·제도적인 맹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런 유의 외국의 헤지펀드들은 회사나 시장이 망가지건 말건 펀드 수익의 극대화가 주된 목표이다. 그 결과 이들은 엄청난 수익을 실현해서 떠난 반면 해당 기업과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번 소송 건과 유사한 행태를 띠었던 소버린-에스케이(SK) 소송 분쟁 사례를 보자. 영국계 투기자본인 소버린 자산운용은 2003년 에스케이 주식 매입 뒤 경영권 분쟁소송을 거쳐 2년 만에 수천억원을 챙겼다고 하는 반면 에스케이주식회사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했고 개인 투자자들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의 주가 급등락으로 엄청난 투자 손실을 봤다.

2004년 영국의 헤르메스 투자운용도 삼성물산 지분 약 5%를 매집한 뒤 언론에 적대적 인수합병 관련 암시를 흘리고 주가가 오르자 보유 지분을 전량 매도해 차익을 취했고 2005년 미국 헤지펀드 칼 아이칸은 케이티앤지(KT&G) 지분 매입 뒤 1년여 만에 수백억원을 챙기고 떠났다.

일각에서는 기업지배구조 투명화와 소수 주주 보호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행위를 옹호하지만, 남아 있는 시장참여자들에게 장기적으로는 상처만 남기고 떠나는 외국 투기자본 행태를 보면 지배구조 개선 유도 명분으로 먹튀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투기자본에 편승하면 소수 주주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전반적인 시장 건전성 관점에서 봤을 때 장기적인 주주 가치 제고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아직 국내 자본시장은 기관 투자가 비중이 낮고 정보가 취약한 개인 투자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니, 정보력과 자금을 갖춘 외국의 헤지펀드들이 공격할 경우 쉽게 흔들릴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에 편승한 개인 투자자들이 종국적으로 피해를 떠안게 될 우려가 크다.

엘리엇 펀드가 이번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경우 앞으로 한국 대표 기업에 대한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더 빈번해질 기폭제가 될까 우려된다. 되풀이되는 헤지펀드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기업 스스로의 투명성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도 절실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이 외국 헤지펀드가 활개치는 먹튀 시장이나 기업 사냥터가 되도록 용인해서도 안 될 것이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이런 관점에서, 지난달 말 삼성이 발표한 배당성향 강화 및 거버넌스 위원회 설치 등 장기적인 주주 가치 제고에 관한 비전 제시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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