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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9 20:49 수정 : 2015.12.09 20:49

박근혜 대통령이 12월2일 체코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또 했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2일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사회주의 국가였던 체코의 체제전환 경험을 남북통일 과정에서 활용하겠다”고 했다. 3일 비셰그라드 4국 정상들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을 지지했다. 한편 북한은 12월4일치 <노동신문>에서 “체제대결을 종식시키는 것은 북남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 조건”이라 했다. 시간적으로 2일 한-체코 정상회담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또 6일치 <노동신문>에서는 “낡은 대결 관념을 털어버리고 진심으로” 북남관계 개선의 길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작년 1월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을 강조한 박 대통령은 3월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을 체제통일(흡수통일) 구상이라며 거부했다. 그 뒤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마저 드레스덴 선언의 일환이라며 거절했다. 올 3월에는 작년 7월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가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북한 엘리트 처리 방안’까지 연구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용어 선택’의 잘못이었다는 해명으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정부 대북정책의 진정성에 흠이 간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마당에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직접 ‘체제전환’이라는 용어를 써버린 것이다.

‘체코의 체제전환 경험 활용’은 우리가 북한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시키겠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체제전환’ 운운하는 것 자체가 ‘체제대결’을 하자는 것이고, 그건 북한의 붕괴를 유도한 후 남북의 체제를 하나로 만드는 ‘흡수통일’ 의도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체제가 지금처럼 계속 유지된다면 남북 공존은 가능할지 몰라도 통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체제가 변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방개혁을 해야 한다. 대남정책과 대외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야지 우리가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 체코 발언이 당장 내일(11일) 열리는 남북 당국회담에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이다. 의제 합의도 못 하고 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시작부터 기싸움이 치열할 것이라는 게 회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북한은 기선제압 차원에서 ‘체제대결’에 대한 입장부터 분명히 하라고 치고 나올 수 있다. 그럴 경우 회담이 합의를 못 이루고 입씨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차기 회담 날짜라도 잡으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최우선시하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설사 북한이 한번 짚고 넘어가더라도 ‘체제전환’ 발언은 박 대통령 대북정책의 진정성에 다시 한번 흠집을 낸 것만큼은 분명하다.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은 앞으로 좀 은근해질 필요가 있다. ‘통일’이라는 말도 좀 적게 썼으면 좋겠다. 분단국 대통령이 직접 ‘통일’에 대해 발언하는 것 자체는 좋다. 특히 청소년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는데 ‘통일대박’ ‘통일준비’ ‘내년에 통일될지 모른다’ ‘체코의 체제전환 경험 활용’ 등의 발언으로 통일의 동반자여야 할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않다. 북한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북한에 진정성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쪽부터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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