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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4 18:44 수정 : 2016.01.04 18:44

지난여름 대학가 오피스텔에 살던 한 대학원생과 케이티(KT) 콜센터 직원 간에 몇시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담당직원이 다른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려고 초고속인터넷과 유료방송 해지를 신청한 학생에게 3년 약정을 채우지 못했으니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 위약금을 내지 않으려면 이사할 오피스텔에 케이티를 이전해서 써야 했다. 문제는 이사할 오피스텔에 깔려 있는 다른 통신사의 초고속인터넷과 유료방송 공용망이었다. 케이티를 그곳으로 이전하면 쓰지도 않는 다른 통신사의 요금까지 이중으로 부담해야 했다. 2년 전 이사 올 때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던 케이티 공용망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전월세 계약 기간인 2년을 넘는 3년의 약정 기간에 대한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결국 무조건 해지를 막아야 할 콜센터 노동자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던 세입자 학생의 실랑이는 13만원의 위약금 납부로 끝났다.

지난해 11월 말 에스케이텔레콤(SKT)이 420만 가입자를 거느린 씨제이(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한다는 갑작스러운 발표가 나왔다. 그 후 한달 동안 방송통신 업계와 학계는 다양한 전망과 우려를 쏟아냈다. 한편에서는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에서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이며 자본과 경쟁력을 갖춘 재벌들이 더 나은 ‘소비자 후생’에 기여할 것이라 평가했다. 다른 편에서는 소수 재벌들에게 집중된 독과점 폐해와 방송의 지역성 몰락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방송과 통신 시장에서 재벌들의 합종연횡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인수합병 건은 두 재벌 간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 중요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스마트폰, 컴퓨터, 텔레비전까지 모두 인터넷 망을 이용할 앞으로의 미디어 환경에서 재벌들이 각자 맡을 분야를 명확히 나누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물리적 망과 인프라는 통신 재벌이, 여기에 얹을 콘텐츠는 씨제이가 맡겠다는 잠정적인 ‘불가침 협정’인 셈이다.

이명박 정권의 종편 허가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박근혜 정권에서 시작되었다. 2500만에 달하는 유료방송 가입 가구와 가입자들이 이용할 방송통신망과 인프라의 재편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미디어의 공공성은 콘텐츠의 정치적 공정함과 균형에 초점을 두어왔지만, 앞으로 달라질 미디어 환경에서 공공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 기반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이런 공공성을 두고 ‘공정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말해왔다. 그러나 공정경쟁이란 다른 사업자가 누리고 있는 규제 완화와 특혜를 자신들에게도 보장해달라는 끝없는 순환 논법에 가깝다. 기업들이 공정을 외칠 때, 콜센터 노동자는 전혀 공정하지 않은 거래를 떠안아야 한다. 소비자 후생은 어떤가? 세입자라는 이유로 선택도 할 수 없는 약정과 위약금에 시달리고, 콜센터 직원 말고는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게 소비자 후생인가. 후생을 누릴 소비자란 결국 가격이 낮을수록 좋아하고 새로운 서비스에 경탄할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최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합병에 대해 4월까지 허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합병 심사는 전혀 다른 관점의 미디어 공공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 정권의 종편 승인 심사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업계의 이해 당사자들뿐 아니라 방송통신 노동자, 그리고 지역 가입자들까지 어떤 공공성을 요구하고 있는지,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를 고민하기에 4개월은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합병의 허가 여부나 조건이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말하기 전에 그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판단 기준부터 논의해야 한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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