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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6 18:56 수정 : 2016.01.06 21:46

지난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정부는 20년 이상 지속돼온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 일본의 법적 책임과 국가적 배상을 주장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올바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의 입장이 다양하고, 때로는 상반될 수도 있다는 면에서 12·28 합의를 둘러싼 해석의 문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중재로 한-일 간 이해의 균형을 꾀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한 양국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이 합의는 새로운 갈등의 서막에 불과하다. 사실, 합의문 하나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해결될 일이었다면 위안부 문제는 20년 이상 끌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알면서도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을 것을 아베 총리가 강력히 주문한 이유는 이후 위안부 문제 관련 분쟁이 재발할 경우 그 책임 소재를 한국 쪽에 돌리려는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독도 및 식민지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 분쟁이 전적으로 한국에 의해 도발된 것임을 자국 국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함이다. 결국 아베 등 일본 우익의 기본계획은 위안부 문제를 한국 민중 대 일본 민중의 대립으로 몰아감으로써 민족주의 에너지를 분출시켜 궁극적으로는 개헌을 성취하고, 이후 재무장화를 포함한 전전 체제로 복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공식 합의문을 보면 소녀상 철거와 관련하여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소녀상 이전에 협조할 것이라는 선에서 양해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언론이 12·28 합의와 소녀상 철거가 사전에 맞교환이라도 된 양 선전하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양국 국민들, 특히 한국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선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12·28 합의는 합의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 밝힌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라는 한-일 간의 더 큰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일본에선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 문제는 물론,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민족주의를 우선시하는 우경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3년, 민주적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했고, 2015년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군사대국화로의 길을 노골화했다. 일본 보수우익의 야심이 일반 국민들 수준에서 상당히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일본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고 해야겠다.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한·일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정념이 사태를 지배하는 한, ‘정의’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아베 정권이 의도하는 바다. 경험적 통칙상,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적 대립의 최종 언어는 전쟁이었음을 역사는 잘 가르쳐준다. 사정이 이러할 때, 문제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길은 한국과 일본에서의 민주주의 확산과 한-일 민중 간의 민주적 연대에 기대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말이다. 한-일 간 평화를 세우고 싶다면 민주주의를 택하라.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 그것이 문제다.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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