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14 18:41
수정 : 2016.01.14 18:41
최근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데 동의했다. 양국 지도자는 역사적인 일을 해냈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일본은 피해자들을 위해 10억엔의 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를 ‘배상금’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게 어떻다는 건가? 생존한 할머니들은 돈이 절실하고, 그들에게는 이것이 ‘배상금’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그저 돈 문제일 뿐이다. 도발적 태도를 보인 아베 신조 총리와의 만남을 피해온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양국간의 무역이나 교류가 정체돼 한국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보기는 했지만, 마침내 한국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10억엔을 받게 된 것이다. 참으로 멋진 외교가 아닌가!
일본 또한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잔인한 식민 지배에 대한 최종 배상을 하게 되었다. 몇 다리 건너 사과를 전달하고 약간의 돈을 지불함으로써 일본은 이 훌륭한 협상을 끝맺었다. 이제 한국은 어떤 국제무대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을 제거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일본은 이번에 지불하는 돈이 ‘배상금’이 아님을 성공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의 할머니들에게 자신들의 관대함까지 보여준 셈이다. 참으로 잘된 일 아닌가!
그러나 실제 내용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멀리 떨어져서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협상으로 일본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아베 총리는 현재 한국 정부와의 공모로 인해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볼 만큼 순진한 것인가? ‘최종적’이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째서 아베는 ‘나’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일본’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과하지 않았는가? 왜 그 사과는 직접적이지 않고 전달을 통해 이루어졌는가? 이 문제는 결코 법적인 배상금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식민통치 시절의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비인간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사과하고 희생자들에게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양심을 도덕적으로 정화하려고 애써야 한다. 성의가 없는 노력에 의해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끝이 날 수는 없다. 한국 정부 또한 홍보를 이용해서 이번 타협의 문제를 지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미숙했다. 아베 정부의 도발적 태세와 행위에 대해 일본과 접촉을 끊은 적이 많다. 오랜 기간에 걸친 악감정은 양국간의 교류에 타격을 주었고 이는 한국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내용은 상관없이 일본과의 거래에만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최근의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뿐 아니라 자존심을 가진 모든 한국인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주었다. 만약 한국이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위안부’ 문제나 역사 문제, 영토 문제에 저당 잡히지 않았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다. 교류를 지속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은 타협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합의는 한국 정부의 문제 혼동과 혼란을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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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딥 쿠마르 미쉬라 인도 델리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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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사람들이 속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부가 각 나라의 언론에 이번 협정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도덕과 신념의 문제는 편법을 써서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이것은 그 피해자들을 위한 싸움의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산딥 쿠마르 미쉬라 인도 델리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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