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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03 18:44 수정 : 2016.02.03 20:58

한국 정부는 최근 일본 정부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위원회의 질의에 위안부의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어떤 문서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을 두고 “지엽적인 협의의 강제성”과 같은 문제에 휘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이 문제가 지엽적인가?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위안부의 피해상 내지 범죄상에 있어서 전혀 지엽적이지 않고, 더구나 12·28 한일외교장관 합의에 있어서도 전혀 지엽적이지 않다.

먼저,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의 통감”이란 도의적 책임에서 한 발 나아갔다고 해석하였다. 물론 이 책임이 도의적 책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만도 진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임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을 훼손한 것이며 나아가 위안부라는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만약 한국 정부도 이렇게 본다면,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여성들의 피해의 핵심부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 연구자들은 위안부의 동원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서와 증언을 수집했고, 이 점은 1993년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에도 명시되어 있다.

둘째, 일본 정부가 협의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광의의 강제성은 인정하는가? 이때 협의의 강제성이란 물리적 폭력, 협박, 위협, 강요 등 직접적 폭력의 사용을 의미하며, 광의의 강제성이란 어떤 행위를 따르거나 견딜 것을 강요하는 법적·사회적 제재의 존재를 뜻하는 것으로 법적 시스템, 정부의 교시, 혹은 군대 상관의 명령과 같은 제도적 권력을 의미한다. 전자는 ‘forced mobilization’, 후자는 ‘enforced mobilization’에 상응한다고 본다. 예컨대,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성폭력을 다루었던 법정에서는 상대방의 육체적 강압이나 폭력 없이도 여성들이 전시 성폭력을 당했음을 인정했다. 이미 전쟁 상태이고 병사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항과 거부는 더 무자비한 폭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완다 법정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나체로 체조를 하게 한 행위도 성폭력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판례에 기초하여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그 규정에서 ‘forced’와 ‘enforced’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쟁범죄로서의 강간, 전쟁범죄로서의 강제 성매매, 전쟁범죄로서의 강제 불임 등의 범죄의 구성요건에서 ‘enforced’이란 “강압적인 환경을 이용함으로써 혹은 진정한 동의를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사람들을 이용함으로써” 자행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은 일본국가의 법적 통치하에 있었을 뿐 아니라 식민지 강점이라는 군사적 통치하에 있었고 태평양 전쟁 중의 사회였다. 여기서 가난한 10대 소녀들을 끌고 가는데 그렇게 많은 물리적 강제가 필요했을까? 군·관·민 합동으로 연결된 조직적 동원과 개인들의 동원에 대한 군과 관의 눈감아주기 또는 촉진하기만 있었다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미 여러 자료들에서 나타나듯이, 조선의 전시동원체제, 직업소개령 등과 같은 제도적이고 법적인 장치들이 민중들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광의의 강제성으로 작동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나아가, 여러 생존자 증언은 피해자들이 거리에서, 기차 안에서, 혹은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끌려갔다고 보고한다. 가족에게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끌려간 조선이란 치안이 존재하던 국가인가. 끌려가던 여성들은 저항하면 구타당하고 굶기고 감금당했다. 눈을 가린 채 끌려가거나 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해도 어디인지 짐작도 못할 제3국으로 끌려갔다. 물론 개인간 편차가 있을 수 있고 여기에 개인업자, 특히 한국인 업자가 개입한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업자들이 전국적으로 10여년을 활약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에서는 형법의 부녀매매죄와 같은 죄의 집행이 마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따름이다. 국가의 협력이나 조장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볼 때, 협의와 광의의 강제성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무지개처럼, 광의의 강제성이 있는 곳에 협의의 강제성이 불필요할 수는 있어도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셋째, 일본 정부는 협의의 강제성을 증명할 문서가 없다고 한다. 이런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문서로 남길 정부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일본국은 전쟁 중에 위안부를 군수물자화했기 때문에, 다양한 자료들을 남기고 있다. 일본군대의 위안부 및 위안소 관리 자료, 전쟁 후 포로들의 증언 및 자료,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 등이 그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주체가 자기 범죄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2016년 벽두에 들어야 하다니, 더구나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지엽적이라고 하다니 더욱 어처구니없고 분노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리하자면, 일본 정부가 굳이 ‘협의의 강제성’이라고 특정한 바 없고 일본은 강제성 일반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협의의 강제성보다 어쩌면 더욱 광범한 영향력을 미쳤을 광의의 강제성에 대한 책임도 불분명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왜 이런 행동의 의미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협소한 것으로 축소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광의의 강제성인 동시에 협의의 강제성이다. 협의의 강제성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광의의 강제성의 존재도 불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의 핵심을 부인하는 것이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의 통감”이라는 합의 내용에 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이 12·28 합의의 소위 불가역적 결정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12·28 합의는 위반상태에 들어갔다고 말해야 한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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