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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3 19:15 수정 : 2016.03.23 20:05

대학은 지금 어떤 형편일까? ‘지성의 산실’은 박물관 용어가 되었다. 대학은 영혼을 반납해버린 채 기업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일회용 청년세대’를 대량생산하는 처지다. 미국의 교육학자 헨리 지루가 짚어낸 ‘일회용’이라는 단어는 “쓰고 난 뒤 쉽게 버릴 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디스포저블’이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삶을 갈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미래조차 ‘일회용 폐기물’이 되고 있다고 분노한다.

자본의 발언권이 압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도 문제지만, 사회 진출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 교육과정은 수많은 졸업생들을 떠돌이로 만들고 있다. 미래를 전망하고 대응하는 생존학습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곳에서 출구전략은 부재하거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장기적 관점이 없으니 일회용 상품 생산라인이 되는 운명이 기다릴 뿐이다. 현실의 긴급한 요구만이 대학교육의 잣대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부 ‘프라임 사업’의 경우, 산업수요에 맞춘 학과 단위 재구성을 선도하는 대학에 정부 지원을 하겠다니, 기업 위주의 구조조정 확대판이 아니냐는 비판이 생겨날 법도 하다. 그러나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대학이 중장기 미래의 변화를 내다보면서 학생들의 앞날을 학생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학과 단위의 벽을 넘어 융복합적 학문 단위 재구성을 촉구하는 의미 또한 있기 때문이다. 미래 환경 변화를 전망한 투입전략과 출구전략을 일치시켜가는 것은 교육비용의 차원에서도 유무형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게다가 인문학적 소양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강조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현실적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마구잡이로 인문학 계통의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이런 흐름과도 배치되고, 더군다나 교육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결국 대학이 자신을 어떻게 혁신해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지적 열정과 공적 헌신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청년 세대가 미래를 스스로 디자인해갈 수 있도록 학문 단위 간 벽이 없는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융복합적 학습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경희대 조인원 총장과 함께 치열하게 나눈 토론과 대화를 기록해 최근 출간된 <내 안의 미래>(한길사)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생존에 편중된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치열함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너는 왜 대세를 따르지 않니?’ ‘너는 왜 취업을 하지 않니?’ 이런 물음이 없는 사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한 특정 대학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총장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가치관을 존중받으면서 사회 진출의 다양한 통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준비 책임은 당연히 대학이 져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취업은 물론이고 창업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도 모두 미래를 위한 생존학습 능력으로 받아들여져야 비로소 우리는 창조적인 사회의 기운을 이끌어낼 수 있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유네스코 미래전망사무국장이자 로마클럽의 회원인 세계적 지성 제롬 뱅데는 ‘사유의 개혁’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장의 긴급함에만 몰리는 것은 시간을 파괴하고, 유토피아를 불법화할 뿐만이 아니라 쓸모없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장기적 관점이라는 시간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 위에다 소멸되어가는 윤리적 가치를 재생해야 한다. 가치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생물다양성이 사라지는 것 이상의 재앙이다.”

‘내 안의 미래’가 진정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이런 깨달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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