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31 19:26
수정 : 2016.03.31 19:53
지난 3월18일 한국원자력학회의 초청을 받아 ‘사용후 핵연료의 후행주기’에 관한 소견을 약 2시간에 걸쳐 밝히고, 토론자로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SFR) 개발 책임자 2명이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에 참가했다. 작년 말 정부가 제출하려던 사용후 핵연료 관리 특별법(가칭)이 연기된 상황에서 후행주기, 즉 재처리와 고속로 추진에 반대하는 견해를 듣고자 하는 자리였다.
핵연료 주기는 우라늄 광석을 채굴한 뒤 농축과 핵연료 제조에 이르는 ‘선행주기’와, 핵발전소에서 3~4년 태운 뒤 꺼낸 핵연료를 냉각해 재처리하거나 최종 처분하기까지의 ‘후행주기’로 나눈다. 2014년 말 현재 핵발전소 터 안에는 경수로에서 나온 6397톤과 중수로에서 나온 7414톤의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가 처분 방법이나 장소도 정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게다가 매년 경수로와 중수로에서 각각 350톤과 380톤가량의 사용후 핵연료가 추가되고 있다.
한국은 치명적인 방사능을 지닌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처분할지 정하지 못한 ‘관망 상태’에서 무작정 핵발전소만 늘려 왔다. 미국·독일·스웨덴·스위스 등이 직접처분, 일본·프랑스가 재처리 뒤 최종 처분하는 정책을 확정해둔 상태이나,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가 가동한 지 40년 가까운데 이제야 발등의 불로 인식하게 되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할 것이 뻔한데도 이를 뒤로 미루고 원자력 추진에 따른 이권 확대에만 몰두해온 이른바 ‘핵마피아’의 구조적 무책임이 문제를 키운 셈이다.
나아가 이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권을 확대하기 위해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건식 재처리의 일종을 ‘재활용’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 재처리 기술과 고속로를 개발하면 우라늄 자원을 100배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필요한 최종 처분장 면적을 줄일 수 있다며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다. 재처리는 투입 에너지와 작업과정에서의 손실을 고려하면, 핵연료의 재활용은커녕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고속로도 1951년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존립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러시아에서는 군사용 과잉 플루토늄을 처분할 목적에서 실증로 단계까지 갔지만, 넓은 국토를 이용하여 사고 피해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개발 중이며, 또 사고가 발생해도 강압적인 정치구조로 은폐하는 체제여서 이 정도라도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영국·독일은 이미 1980~90년대에 개발을 포기하였고, 프랑스는 개발계획도 불명확한 상태이며, 일본의 고속로 ‘몬주’도 1995년 가동 실험 중의 사고 이후 20년간 멈춘 상태이다. 몬주는 정지상태에서도 매년 약 2000억원의 유지비를 잡아먹어 현재 폐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처럼 핵연료의 후행주기가 지닌 과학적 한계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런 지적에 대한 핵 전문가들의 속좁은 대응은 너무나 답답했다. 사용후 핵연료의 출구를 모색하는 데 중지를 모아도 부족한데도 ‘경제학자가 왜 원자력공학을 논하는가’라는 식의 타박만 무성했다. 모처럼 준비한 국내 실태에 대한 분석에는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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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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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학문과 학제적 연구는 핵연료 처리 같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꼭 필요한 접근이다. 하물며 필자는 원자력정책에 관한 연구를 지난 25년 동안 해왔다. 원자력계의 이런 반응은 막대한 연구비와 개발비에 따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학문을 배척하는 경직성과 폐쇄성을 드러낸 것처럼 보여 안타까웠다. 일부 폐쇄적 전문가에게 후손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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