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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13 23:50 수정 : 2016.04.13 23:50

오래전 코미디 소재 중에 이런 게 있었다. 1980년대의 정치 풍자 중 하나로 기억하는데, 바로 “자유당 때”라는 대사이다. 현실을 낯설게 보고 비틀자니, 국가폭력이 극에 달했던 엄혹한 시절이었고,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대하는 방식은 이미 20년도 더 지난 ‘자유당’이라는 기표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당대의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이는 단지 권력과 제도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 시대의 상식이나 정상성, 즉 문화에 대한 도전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은 어떤가? <개그콘서트>나 <에스엔엘(SNL)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정치풍자가 등장하지만, 그걸 보며 왠지 모를 무기력함과 불편한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유력한 정당이나 정치인은 예외 없이 희화화되지만, 이는 동시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거나 과연 저런 게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더구나 이제 청와대보다 힘이 더 세다는 재벌을 풍자하는 코미디 소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실제로’ 변화시키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반문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정치의 연예화, 경제의 희화화가 우리에게 “이제 누구나 마음 내키는 대로 비판할 수 있는 민주적인 사회에서 시민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라는 안도감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사한 문맥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와 촘촘한 미디어 환경 아래 수용자가 능동적이고 스마트하다는 담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예로 문화방송(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같이 생산자와 수용자가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공유하는 형식을 차용한 프로그램은 진정한 상호작용이거나, 또 이것이 미디어 환경뿐 아니라 사회와 우리의 삶에 어떤 구체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지 질의해야 한다. 혁신과 창조, 인문학적 경영의 대명사가 된 스티브 잡스를 교주처럼 추종하며 애플의 제품만을 소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별해주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주는가?

오히려 이것들은 대개의 경우, 자본의 논리와 한 몸인 문화산업이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구조적으로 ‘제한된’ 선택지에서 내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한다는 환상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가? 이는 미시적 영역이나 일상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분노보다는 혐오에 익숙한 세태의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로 기능하지 않나?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안과 피로가 만성화한, 이로 인해 거부하기 어려운 소비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방임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는 나의 무고함을 증명해주는 알리바이는 아닌가?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제 일상에서부터 시작해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다시 시민성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나의 자유와 건강한 사회를 저해하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함께 이겨내기 위한 참된 소통과 연대, 때론 저항을 통해 변화와 다른 사회를 꿈꾸고 이야기하자. 이는 끈끈하게 내면화된 우리 안의 자본주의적 환상, 가령 관음증과 스노비즘, 소비와 물신주의의 아비투스를,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연대와 공유로 대체하고, 정치적 변화를 위한 창조적 놀이와 협업에로 우리 자신을 초대하고 이끄는 용기 있는 실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실천과 문화의 확산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사회의 재건이라는 큰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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